조국에 대한 철학적 연민

“국가의 분열을 극복하는 길은관념의 문제 ‘키치’를 뛰어넘어국민이 나라의 운명 성찰해야”

2017.10.12

이성숙
재미 수필가·시인


우리는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나 가치관이 절대적이라는 착각을 하고 산다.
지적 단순함이다.
여론의 양극화도 이 같은 사고의 집단현상이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최진석 교수는 우리 사회의 지리멸렬한 분열을 사유가 없는 사회라고 진단하고 있다.
세계 최고, 최악의 모순국가를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도 이념분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거대 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운신도 자유롭지 못한 우리다.
사면초가가 따로 없다.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북한은 전쟁준비가 완료된 나라다(유엔 동시 가입하던 날 북한은 국제법상 독립국가가 된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핵무장까지 마친 상태이니 북한을 군사강국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그의 저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해서 어떤 가치의 예술적 극치를 ‘키치’라고 정의했다.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는 키치의 가장 좋은 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 진보 간 갈등도 다름 아닌 키치전쟁이다.
서로 다른 키치가 난무할 때 그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키치란 구성원 전체의 가치가 반영된 극점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세대별 키치, 지역별 키치, 국가별 키치, 소규모 친목 모임에도 키치는 있으므로 우리는 다양한 키치 아래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집단의 키치는 자칫 ‘주의’나 이념으로 돌변하여 구성원을 맹목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밀란 쿤데라는 이런 점을 들어 키치가 집단화 하면 천박해진다고도 했다.
지금의 한국 상황과 비슷하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대중은 우매하다고 지적했다.
시차적으로 크게 떨어져 있지만 플라톤의 대중은 밀란 쿤데라의 집단키치에 함몰된 대중과 일치해 보인다.
여기에 우수한 개인은 파묻히고 만다.
이런 대중의 지적 단순함은 키치를 우상화 한다.
그러다가 믿었던 키치가 와해될 때 집단은 패닉상태를 겪는다.
이데올로기의 전환기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촛불 민심은 부정부패를 청산한다는 명분 아래 모였다가 대통령 탄핵을 성사시킨 후 흩어졌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탄핵이 성사된 지금, 그들은 혹은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한발 물러나 생각해 보면 촛불의 키치는 민주주의였다.
즉, 촛불민심이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촛불집회는 그들만의 이기적인 축제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키치의 천박함이다.
촛불을 들었던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민주주의는 지금부터다.

보수 진보를 떠나 한반도는 지금 키치들의 각축장이다.
탄핵과 그것을 만회하려는 두 키치, 평화냐 전쟁이냐의 두 키치, 안전이냐 안보냐의 두 키치, 한반도 비핵화라는 미국의 키치와 주체사상 키치 아래에 있는 북한 정권들이 그것이다.
급기야 미국과 북한은 충돌할 위기에 있다.
자신의 키치만이 진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함정이 있다.
키치는 내가 믿고 추구하는 ‘가치’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옳지만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이들 키치의 충돌로 조국이 위태롭다.
이를 막을 방법은 없는가. 키치는 관념의 문제다.
최진석 교수는 관념을 뛰어넘을 대안은 현실직시라고 가르친다.
실용적 명시적 접근만이 서로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으며 발전적 해법이라는 이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사람의 의식은 여기까지 자라 있지 않아 보인다.
상대방을 비난할 뿐 대안이 없다.
이웃 일본과 역사 분쟁이 있을 때에도 우리는 울분을 터뜨릴 뿐, 일본을 뛰어넘을 고군분투의 노력이나 성찰은 없었다.
상대방을 삿대질하고 성토하는 것으로는 분은 풀릴지 모르지만 형세를 역전시킬 수는 없다.
국세를 역전시키는 힘은 분노를 발전 에너지로 전환할 때만 가능하다.
국민의 현실인식, 그것만이 나라를 보존할 것이다.
상대가 북한이든 일본이든 또한 미국이든.
나라가 등불 앞에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키치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국시 헌법 제1조 1항을 보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이념에 갇힌 정치지도자들에게 미래지향적 현실직시를 당부하고 싶다.
우리가 가꾸어 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는 지켜져야 한다.
자기논리를 뛰어넘는 현실인식은 바둑판에서 훈수를 두는 것과 같은 정신적 행위이다.
분열을 극복하고 헌정사를 이어가는 길은 우리의 대중인 국민이 애국지정(愛國之情)으로 나라의 운명을 성찰하는 것이다.
이성숙
재미 수필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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