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발행일 2017-10-22 20:10:1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행복은 나 자신 마음에 달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외부의 것에서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잔잔한 수면이 햇살에 반짝인다. 가을바람이 일으키는 물결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다.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며 반짝이는 물을 들여다본다. 꽃이 활짝 핀 울타리 주변으로 다가든다. 낯익은 반가운 얼굴을 만난 이는 손을 마주 잡고 흔들어 댄다. 가을 햇살 아래 추억의 얼굴들이 모여 옛날을 상기한다. 남과 여, 싱싱한 젊음을 뽐내는 이와 허리 구부정한 원로 선배님까지 모두 들뜬 마음이다. 동창회 임원을 맡고서도 어느 해에도 참가하지 못했던 대학동창회, 가을 모임에 얼굴을 비친 날, 모임 장소는 ‘송해 공원’이라고 적혀 있다.

“송해 공원? 공원 이름을 왜 그렇게 명명했지?” 공원의 안내 표지판을 유심히 살피던 호호백발 노인도 한마디 던지신다. “어찌하여 송해 공원이여?” 그 느닷없는 물음에 튀듯이 답이 날아든다. “소나무와 바다 같은 호수가 함께 있다고 하여 그렇게 ‘송해’라고 이름 지은 것 아닐까요?” 어린 여학생이 발그레하게 대꾸한다. “아녀~ 아녀~! 송해 선생이 맨날 무대에 나와 마이크 잡고 목청껏 소리 질러 번 돈을 희사해서 만든 공원일 것이여~ 아마도~암~그렇고말고!” 동창회 임원 중에서도 최고참 원로이신 선배님께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손을 흔들며 답하신다. 일요일 정오 전국 노래자랑대회, 그 무대의 명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은 송해 할아버지! 그분의 성함을 넣어 명명한 공원이 맞는가 보다. 곳곳에 그분의 얼굴이 코믹하게 장식되어 있고 흉상까지 만들어 호수를 내려다보는 다리 위에 세워놓을 것을 보니 말이다.

농촌의 일과 수자원을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하는 장관직에 있었던 동창이 모처럼 모임에 참가하였다. 그동안 너무 바빠 그리운 이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살다가 이제야 고향을 찾아왔다며 옛 친구를 만나 지나간 이야기를 되새김질하며 가슴 따스해 온다며 심정을 털어놓으신다. 그간 어찌 살았는지, 바빠 전화 한 통 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에 치여 살았던 그 세월을 회상하며 아득한 눈빛을 지으신다. 치열하게 살았던 그날들을 돌아보면 그 숱한 지난 일이 어제 일만 같다고 하신다. 어언 40년, 대학교 동창들을 떠올리면 얼굴도 이름도 아 삼삼하지만 옛날의 학교 풍경들은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한다. 꿈속에서라도 다시 한 번 그곳에서 친구들과 그 옛날을 되새기고 싶다고 하신다.

자그만 산을 올라 햇살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아늑한 숲길을 연출하는 오솔길을 걸으며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환갑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청년의 몸매를 유지하는 선배님은 비결을 살짝 이야기하신다. “나이 들면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오로지 건강”이라고 주장하신다. 그리하여 본인은 매일 아침 산을 오르며 한 시간씩 걸으신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밥맛은 꿀맛이고 머리도 맑아 오고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 보이리라.

한 선배는 아일랜드에 여행을 갔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신다. 그곳에 모처럼 눈이 내렸다. 온 세상이 하얗게 되자 개들은 꼬리를 흔들며 뛰어다니고 새들도 “짹짹! 짹짹!” 날아다니며 노래하였다. 새들이 너무 요란스레 노래해 대기에 그분은 귀국하여 새 박사님께 여쭈어보았다고 한다. “눈이 내리면 강아지뿐 아니라 새들도 좋아서 난리들을 하나 보죠?” 새 박사님 왈 “눈이 내리면 새들은 먹을 것을 찾지 못해 죽을 것만 같으니 서로서로 어디에 먹을 것이 있는지 정보를 교환하느라 죽자 살자 울어댄다는 것이지요.” 우리 눈에는 노래하는 것 같아도 먹고살기 어려워 울부짖는 것을. 내 마음에 따라 사물이 행복하게 때론 슬프게 보이지 않겠는가.

문득 입가에 맴도는 ‘행복’이란 시가 떠오른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던 그 나태주 시인의 시가 맴돈다.

행복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외부의 것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지 않았으랴. 하늘하늘 바람에 살랑대는 코스모스 꽃잎이 가을 햇살에 밝게 빛난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모두 즐거워하는 이들. 젊음이 눈부시다. 지나가버린 세월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린다. 가슴에서 추억이 일렁인다. 가을 하늘도 호수의 물결도 다시 젊음으로 출렁대 보자고 손짓을 한다.

가을이 짙어간다. 햇살 아래 곱게 흔들리는 호수의 물결처럼, 우리도 늘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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