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12월

“끝에 다다르면 끝은 없는 것 느껴 과거는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 12월 있으므로 내년을 기약한다”

2017.12.06

박준우
박준우


A형! 12월입니다.
오랜만에 편지를 쓴다는 게 따뜻한 벽난로를 바라보는 소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고 보면 편지는 애절함이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달력의 제일 끝장, 한 장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해가 달라질수록 바라보는 눈의 각도도 조금씩 바뀌어가는 징표라고나 할까요. 열한 달의 세월을 내동댕이치고 떡 하니 서 있는 12월이 결승점에 다다른 마라톤 선수처럼 의젓해 보이기도 합니다.
생뚱맞게도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지 뭡니까? 자기 삶을 태워서 다른 사람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열정의 꽃은 봄날 와르르 피는 그런 향기와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이끌리는 커다란 공간이 한없이 펼쳐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발자국이 시고 음악이듯이 큰 발걸음보다 작다고 해서 움츠릴 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큰 것, 작은 것들이 모이고 비비며 얽혀서 굴러가는 것입니다.
제가 열두 달 중 12월을 참 좋아하는 이유가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까치밥’처럼 붉어서 터지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A형! 무엇이든 ‘끝’에 다다르면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강한 유혹을 느낍니다.
끝이 어디 있습니까? 다만 새로운 시작일 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은 지구가 네모난 줄 알고 멀리 항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끝을 두려워한 것이지요. 현실에 안주하려 들지 현상의 틀을 깨고 나가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끝’을 부정했습니다.
‘네모’의 벽을 뚫고, 항해를 계속하여 마침내 ‘신대륙’을 발견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끝은 없습니다.
다만 새로움이 있을 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12월이 지나면 한 해만 저물 뿐 새로운 해가 돋지 않습니까? 세상을 살다 보면 막상 무엇이 될 때보다 준비할 때가 더 가슴 벅차고, 희망이 부풀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당신의 고생은 감내하며,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쳤던 것처럼 새해를 위한 출항 채비에 12월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A형! 저는 과거에 얽매인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지나간 것은 거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거울은 비춰보는 것이지 창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종일 거울만 쳐다본다고 삐죽한 턱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과거의 늪에 빠지면 미래는 숨기마련입니다.
지금 나라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치권도, 언론도 거울 자랑만 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는 허무는 것이 아니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보수라고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전쟁의 ‘위협’ 아니면 ‘구속’뿐입니다.
국민의 가슴이 추위보다 더 얼어붙어 있다고나 할까요. 이 시류에 편승하여 우리나라가 뭐 범죄소굴이라도 되는 것처럼 죄다 사정기관만 늘리려고 합니다.
‘공직비리수사처’, ‘국가수사본부장’ 신설 등등. 참 딱하지 않습니까? 백성을 범죄시하는 것보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정치를 펼쳐야 나라가 융성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겨울 무를 저장하려면 적당한 깊이로 파야 하는데 샘을 파듯이 해서야. 그래도 희망을 품어봅니다.
12월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묻기에 딱 좋은 달인 데 설마 새해로 이어지진 않겠지요?
A형! 12월은 참 좋습니다.
추수를 마친 텅 빈 들판을 바라보면 소년처럼 두 팔을 벌리고 뛰쳐나가고 싶습니다.
이때라야 들판에서만 들을 수 있는 바람 소리를 가슴에 담을 수 있어서입니다.
무엇보다 다음을 위해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이 아름답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허리야”하면서 절인 배추를 씻는 아내의 얼굴에 스쳐가는 행복의 빛깔. 세상에 그 어떤 카메라가 이 빛깔을 찍을 수 있을까요? 12월은 저무는 것이 아니라 불태우는 것입니다.
논두렁을 태우는 것처럼 모든 어지러운 것들을 태워 새해를 위한 거름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운 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두 손 모아 축복의 기도를 올려야겠습니다.
방안에 들어오는 고운 햇살처럼 사랑을 담아내는 12월이 있으므로 또 새로운 한 해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A형!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고 나목으로 서서 겨울을 응시하는 나무들처럼 참 좋은 12월을 어깨동무하고 싶습니다.
최해남
시인·수필가
전 계명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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