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Z세대에 다가서기

“요즘 청소년의 은어, 매체의 영향 커 줄임말 등 다양한 형태의 은어 사용 지나가는 유행처럼 시기별로 변화”

2018.03.13

김종헌
동시인·문학평론가

복도를 지나가는데 욕설 같은 한 마디가 들렸다.
‘와아, 개빡치겠네.’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 중에 어떤 여학생의 격앙된 목소리였다.
신경질이 났을 때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이다.
‘열 받았다’를 더 강하게 표현한 말이다.
뒤이어 들리는 녀석들의 대화는 알아듣기 어려운 국적 불명의 외계어였다.
요즘 아이들은 주로 SNS나 카카오톡 채팅방 등을 통해서 줄임말, 초성만 이용한 문자, 국어+영어의 조어 등 다양한 형태의 은어를 쓴다.
따뜻한 봄 햇살에 찬물을 끼얹는 듯해서 씁쓸했지만, 괜히 끼어들어 한마디 하면 ‘꼰대’ 소리나 들을 것이 뻔해서 그냥 지나쳤다.
또 말이라는 게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마냥 나무라서 될 일도 아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Mark Prensky)는 ‘디지털 원주민, 디지털 이주민’(2001년)이라는 논문에서 1980년~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디지털 원주민이라 했다.
그중에서도 1990년 중반부터 2010년 중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Z세대라 하였다.
이들은 유행에 민감하며 인터넷 사용은 기본이고, 이메일과 실시간 채팅으로 친구들과 대화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 막 입학을 한 새내기들은 1997~8년생들로 이 Z세대들이다.
이들은 인터넷 게임과 랩 음악을 좋아한다.
따라서 자연스레 그들의 말과 행동은 디지털의 범주에 놓여 있다.
카톡방을 통한 그들의 대화는 은어와 유행어, 신조어 등으로 빠르게 이루어진다.
흔히 초성만 따서 ‘ㅇㅈ’(인정), ‘ㄴㄴ’(no no)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빼박캔트’(빼도 박도 못한다)라며 우리말과 영어를 섞어 말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동의?’하면 ‘보감’으로 동의 여부를 답한다.
이들은 이렇게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온라인과 일상의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고 그들의 은어로 소통한다.

아직 동기들이 낯설고 어색한 탓도 있겠지만 새내기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혼놀’(혼자 놀면서 외롭지 않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하며 앉아 있는 강의실에 들어섰다.
불쑥 ‘학기 초라 피곤해서 오늘 내 얼굴 완전 개빻았지?’라고 말을 걸었다.
혼족으로 조용히 앉아 있던 학생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또 한쪽에서는 우우하는 소리와 함께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첫 만남에서, 그것도 글쓰기 선생이 잘못 사용된 말을 나무라도 시원찮을 판에 그들의 말을 써는 것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나도 한두 마디 정도는 이런 너희의 은어를 안다는 식으로 ‘오늘은 나도 급식충이었다’며 점심은 먹었냐고 인사를 건넸다.
혼놀과 긴장으로 어색했던 분위기가 좀 풀리는 듯했다.
내친김에 순우리말과 은어 몇 개를 비교하면서 말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 줬다.
이렇게 한두 마디 그들의 은어로 낯선 신입생들과 화기애애하게 첫 시간이 지나갔다.

모국어를 살려서 아름답게 사용해야 하지만 청소년기에 사용하는 특정 은어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오히려 그들과의 대화를 단절시킨다.
흔히 은어는 퇴폐풍조가 만연할 때, 또 자기불만이 잘 해소 되지 않을 때, 표현욕구가 억제될 때 사회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나타난다.
또 이런 말은 그 시기에 그들만의 동질성을 확보하면서 나름대로 우쭐대는 겉멋, 혹은 센 척 보이려는 그들의 생물학적 특징이 빚은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의 은어는 매체의 영향이 크다.
그러고 보면 어느 때 은어가 나타나지 않은 시기가 없었다.
지금 디지털 이주민(아무리 노력해도 아날로그적 경향으로 떨어지는 세대)인 어른들도 청소년 시절에는 대부분 은어를 사용하면서 자랐다.
내가 대학 다니던 그 시절 은어 중 하나로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가 있다.
요즘 아이들 말로 하면 ‘개빻았다’ 정도이다.
또 ‘돌직구’는 지금의 ‘빼박캔트’ 쯤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국어+일본어로 만든 ‘후카시넣다’, ‘히야시되다’ 등도 자주 사용하였다.
그때 기성세대는 ‘요즘 학생들의 언어 사용이 문제’라며 걱정하고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표현을 쓰는 그때의 청소년(지금의 성인)들은 없다.
은어는 곧 사라진다.
Z세대의 은어 중에 일본 음란 동영상 등에서 따온 말을 그 연원도 모르면서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걱정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그 시기만의 독특한 은어는 곧 지나가는 말로 보아야 한다.

개강 첫날 ‘낄끼빠빠’(낄 때 끼도 빠질 때 빠지는 것)하며 모처럼 그들의 은어 한두 마디로 대화의 물꼬를 틔운 후 노란 산수유 꽃같이 새뜻하게 수업을 마쳤다.
강의 시작을 그들의 은어로 한 것과 달리 마지막 인사는 순우리말로 했다.
‘안다미로(그릇에 담은 것이 넘치도록 많이) 먹고 모도리(빈틈없이 야무진 사람)가 되어라’며. 새내기들의 풋풋한 웃음소리가 봄기운을 잔뜩 몰고 와 캠퍼스가 화사하다.
며칠 전 때아닌 눈 폭탄을 맞은 꽃가지는 봉긋한 꽃망울을 안은 채 발그레 부르텄고.
김종헌
동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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