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

[미주통신]미투, 끝나지 않은 전쟁

이성숙 재미수필가

2018.08.09

이성숙
재미수필가

취업한 지 반년도 안 된 직장에서 월급이 반 토막 난 여성이 있다.
문제는 이 여성이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희는 중견 신문사 프리랜서로 매주 신문의 다섯 면을 도맡아 처리해왔다.
일이 좀 많다는 생각은 있었어도 글쓰기는 그녀의 천직이었고 그녀는 이 일을 즐기고 있었다.
친화력 있는 그녀의 인터뷰 기사는 언제나 생동감 넘쳤다.
비즈니스 업체에서는 그녀의 인터뷰 기사에 크게 만족해서 인사를 보내오곤 했다.

입사를 위해 면접을 보던 날, 편집장은 당초 소개받을 때 들었던 것 보다 많은 급여를 주겠다고 했다.
그 차이가 큰 건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는 기분 좋은 제안이었다.
그 후 편집장은 사무실에 자리를 만들어줄 테니 나와서 일을 하라, 회사 건물에는 주차가 어려우니 동네 피트니스 클럽 주차권을 줄 테니 그곳에 주차를 하라는 등 출근이 필요 없는 프리랜서 기자에게 은근히 출근을 요구했다.
진희는 주차권은 물론 출근도 거절했다.
진희에겐 불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서는 진희에게 편집장은 5년 넘은 프리랜서도 있는데 그 사람들 얼굴 아무도 안 봤다는 말을 던졌다.
개운치 않은 여운이 남았지만 직장생활 경험이 없는 진희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후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회사 근처에 오느냐고 묻는다.
취재 약속이 잡힐 때 간다고 했지만 그는 주로 언제 오는지 재차 물었다.
수요일쯤 가서 한 번에 여러 업체를 방문하고 올 생각이라고 대답하자 편집장은 수요일마다 그와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밥은 편한 사람과 먹어야 한다면서. 진희에게 편집장은 편한 사람이 아니었다.

더이상 그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고 점심을 함께 했다.
남자들의 수법인지 그의 수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입사 인사치레 같은 분위기의 점심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편집장은 “요즘은 미투 때문에 함부로 어디 가서 밥도 못 먹겠다”고 했다.

진희는 점심 후 곧바로 취재 약속을 잡아 두었으므로 식사를 마치자마자 일어났다.

다음 주 편집장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자신과의 점심을 당연시 하는 내용이었다.
진희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 다음 주 수요일 점심시간, 그를 만났다.

그날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진희는 “매주 편집장님과 점심을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날 이후 진희에게는 모종의 악성전파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는 신문에서 진희가 쓰던 코너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진희는 잡지 기사 취재로 옮겨 배정되었다.
그 후 한 달 정도 편집장에게서 연락이 없는 동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문자메시지가 왔다.
회사 근처에 언제 오는지. 진희는 다음 날 취재 약속이 잡혀 있다고 했다.
다음 날 회사 앞 식당에서 편집장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 그는 진희 일의 반을 줄이겠다고 했다.
회사 재정이 어려워졌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예상이 들어맞고 있었다.
식사는 언제나 본인이 사겠다고 했던 편집장이 그날은 주문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진희가 종업원을 불러 점심메뉴를 골랐다.
편집장이 커피를 주문하지 않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입사한 지 겨우 넉 달, 치명적 실수도 없고 현장 반응도 좋은 직원을 내보내기는 부담스러웠던 편집장은 진희를 교묘히 괴롭히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는 진희가 회사를 쉽게 그만둔다고 할까봐 오랫동안 해줘야 한다는 부탁 같은 말까지 덧붙였던 사람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비중 있는 기사를 맡길 것처럼 말하던 편집장을 생각하면 태도가 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그렇다고 꼬집어 내색할만한 소위 증거도 없는 상황이다.
아메바. 진희는 밥 먹는 내내 아메바를 떠올렸다.
일정한 형태가 없어서 손에 잘 안 잡히는 단세포 생물. 손에 잡히지 않는 이 농락당한 감정은 아메바를 닮았다.

직위를 이용한 성희롱, 성적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용기 내어 고발자로 나선 것이 미투 운동의 발단이다.
거기에는 당사자 외에 아무도 눈치 챌 수 없는 교묘함이 있다.
진희는 자신의 선택인 듯 퇴사를 결정해야 할까, 회사 재정이 어렵다는 편집장 말을 믿는 시늉하며 급여가 반 토막 난 상황을 견뎌야 할까. ‘미투(me, too)’는 진행 중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다 활발하고 소수자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미국에서는 한국에 비해 여성들끼리의 연대가 강한 편이다.
미국 역시 여전히 남성중심 사회다 보니 여성은 사회생활에서 우선 수(數)적으로 약하다.
남성 중심의 성(性) 차별적 문화도 겪게 된다.
이런 인식이 여성들 사이에 동류항을 만들어낸다.
미주 한인사회나 한국에서도 미투가 일회성 고발로 끝나서는 안 된다.
미투운동이 일하는 여성들에게 건강한 토양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숙
재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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