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

[미주통신]그가 허용했고 나는 도달했다

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준다‘정복’한다는 것은 불손한 생각과도한 욕심 버리고 정상 올라야

2018.09.13

이성숙
재미수필가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정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었다.
대신 도달했다고 말한다.
정복이란 상대를 돌이킬 수 없는 힘으로 완전히 제압했다는 뜻이다.
정복은 대항적 의미를 지닌다.
내가 누군가를 정복하기 원한다면 상대는 모름지기 저항할 것이다.
저항이 강력할수록 정복의 만찬은 성대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저 받은 유산처럼 승리감과 도취감도 오래가지 못한다.
정복은 군림을 의미하며 지배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정복은 가학성을 띤다.
도달은 상대가 없어도 좋은 일이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므로 누구나 원한다면 닿을 수 있는 상생의 맛을 지닌다.
도달은 성취다.
함께 갈 수 있는 길이요, 손잡아 이끌어 줄 수 있는 길이다.

우리가 살면서 끝없이 추구해야 할 덕목은 상생이다.
성악설을 따돌리는 것도 상생이요, 인간성을 나눌 수 있는 경지도 결국 상생이다.
홀로 우뚝 선 나무가 없다.
나무는 대지의 양분과 그를 단련시키는 바람을 닮으며 성장한다.
홀로 선 듯 보여도 진정 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의 요구는 복잡하지 않다.
그리 높게 솟기까지 산이 겪었을 외로움과 신고, 산이 품었을 옹이를 이해하면 그만이다.
산이 되어 그가 얻은 성취를 나누는 것, 그것만이 산의 욕심이다.

산은 우리를 뿌리치거나 만류하지 않는다.
오만하지만 않다면 우리는 언제나 산에 오를 수 있다.
그의 품은 넉넉하고 그의 속살은 순순하다.
우리는 산에 오르기 위해 그의 뿌리를 잡기도 하고 그의 그늘에서 쉬기도 한다.
그가 내뿜는 산소도 맘껏 들이켠다.
그는 우리를 품기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 준다.
그가 손 내밀지 않았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그곳에 이르며 정복이라니 인간의 불손함이다.
그가 허용한 길에 우리는 도달할 뿐이다.

드디어 마운틴 볼디 정상에 올랐다.
나 같은 아마추어에겐 실로 장구한 여정이었다.
이곳에 오기 위해 주변 봉우리 몇 곳을 등반하며 산세를 익혔지만 내 체력은 여전히 문제였다.
나는 산발치부터 오르는 걸 포기하고 맹커 플랫까지 자동차로 움직였다.
그곳부터 정상까지는 4.5마일, 거리상으로는 만만해 보여도 험악함에 있어서는 고난도에 해당하는 트레일 코스다.
해발 1만94피트, 마운틴 볼디는 산의 규모가 말해주듯 등산로도 100여 군데에 이른다.
그 중 세 곳의 등산로를 시도했고 두 군데를 완성했다.
가장 길다는 올드 트레일 코스는 그야말로 발등 정도 올랐다 숨이 차서 포기한 후 다시 시도해 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올드 트레일을 선택하여 악마의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는 웬만한 선수가 아니면 쉽게 덤빌 수 없는 난코스이기도 하다.
알프스나 에베레스트 같은 세계적 명산 등정을 계획한 사람이 고산병에 대비하여 훈련하는 곳이라 하니 험난함을 묻지 않아도 알 만하다.

이번에 내가 택한 길은 올드 트레일 초입을 지나 차량 통제 바리케이드가 쳐진 곳까지 승용차로 오른 후 걷게 되어 있는 사우스 코스였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외줄 폭포와 만난다.
폭포를 지나고 스키 헛(hut)을 지나면 중부능선을 넘은 것이다.
그 자리에서 고개를 뒤로 꺾으면 산 머리가 보인다.
반을 넘었다고는 해도 길의 가파름과 산 표피의 상태가 급속히 험해져 진행은 훨씬 더디다.
정상에 이르면 하산 경로는 두 가지, 악마의 능선을 타는 길과 왔던 길을 되돌아오는 길이 있다.
하산로는 일단 올라 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

탈수에 대비한 물과 오이를 넉넉히 준비했고, 김밥과 계란, 귤, 바나나, 에너지 젤리를 준비했다.
급경사의 바위산이니 등산화도 단단히 다시 조였다.
시간은 염려하지 말고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3, 4m를 걸었을까 벌써 숨이 가쁘다.
시작부터 쉽지 않다.
연습 산행이 없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되돌아 내려올 뻔했다.

산은 경사가 심하고 위로 오를수록 흙길이 바위 길로 변한다.
작은 조각바위부터 날 선 큰 바위까지 보행로를 덮고 있어 걸음 옮기기가 수월치 않다.
전날 올라가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은 사람들이 나의 둔중한 걸음과 달리 재빠르게 새벽 공기를 가르며 내려온다.

4.5마일 길을 다섯 시간 만에 올랐다.
뾰족해 보이던 정상은 의외로 평평하다.
발에 열이 나며 화끈거린다.
해냈다 하는 느낌보다 통증이 먼저 왔다.
온몸이 먼지와 땀으로 찐득거린다고 느끼는 사이 바람이 몰려와 모자를 낚아채려 한다.
산정의 바람이다.
비로소 안도를 누린다.
바람을 만끽한다.

악마의 능선(Devil Back born)이 발아래 놓여 있다.
길은 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폭이고 양옆은 낭떠러지다.
바람이 심하거나 자칫 몸이 흔들리면 여지없이 목숨을 잃는 곳이다.
나는 왔던 길로 내려가기로 하고 악마의 능선을 사진에 담았다.
산을 향해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건 지금까지 얻은 걸 모두 잃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산이 들려준 말이다.
이성숙
재미수필가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