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

[이경우의 따따부따] 나라가 있으면 뭐하나

대법원 일제 강제 징용 배상 판결피해자 개인이 소송까지 하게 방치시대의 아픔 겪은 백성 보듬어야

2018.11.08

이경우
언론인

군함도를 찾은 것은 우리 대법원이 일제 징용자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뒤였다.
한 때 5천 명 이상이 살았다는 일본 나가사키의 해저탄광 군함도는 세월에 씻기고 찢어져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유령의 집 세트장이다.
아파트였던 고층빌딩도, 초등학교였던 건물도 유리창 하나 남아있지 않고 벽은 허물어져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나가사키 항구에서 배로 30여 분, 그러나 해변에서 빤히 보이는 섬이 70여 년 전까지 우리 국민을 징용해 강제 노역시킨 지옥섬이었다.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군함도. 일본인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도 관광객에 섞여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당시 영상 자료와 해설은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한 긍정적 표현들로 도포돼 있었다.

군함도에서 일했다는 일본인 해설자는 군함도 생활상을 실감 나게 설명했다.
탄광에는 일본인 외에 ‘외국인’도 있었는데 모두 서로를 도와가며 작업에 임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미화해도 우리가 탄광을 ‘막장’이라 부르듯 그곳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사람의 생존공간은 아니었을 터. 그곳에서 1천 명도 넘는 조선인 징용자들이 강제 노역을 당했지만 그들의 한과 울분을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그동안 숱한 파문을 일으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피해자의 승소로 결판났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것은 2005년이었다.

지난 2008~2009년 1심, 2심 재판부는 “이미 배상 시효가 지났고, 같은 사건을 기각한 일본 판결이 국내에도 효력을 미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2년 “불법 식민 지배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ㆍ일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신일철주금은 피해자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신일철주금이 불복해 사건은 2013년 대법원에 다시 올라왔고, 지난 7월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30일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했다.
그로부터 최종 판결까지 다시 6년이 더 걸린 것이다.
소송한 지 13년 8개월 만이다.
광복 73년 만에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에 일제 징용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국가가 없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의 억울한 징용이었다.
그 70여 년 한을 이제야 대법원이 풀어준 것이다.
개인의 길고 험한 법정 다툼 끝에 얻어낸 승리였다.
그때,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일합방, 나라가 없어 백성이 설움을 당했던 거다.
그리고 1945년 광복으로 나라를 되찾았다.
나라를 빼앗겼던 당시의 대한제국을 지금의 대한민국이 승계한 것이라면, 국가가 역할을 해야 했다.

일본의 잇따른 반발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본을 향해 현명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이번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일본 정부의 불법적 식민지배와 이에 따른 일본 군수업체의 불법 강제 노역에 대한 위자료 청구’라는 면에서 더욱 국가의 책임이 중요한 이유다.

나라가 있으면 뭐하나, 국민 개인이 거대 제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여야 하는 현실이라면. 국가는 지금부터라도 개개인의 피해 실태를 확인하고 이에 상응하는 배상과 보상을 해야 마땅하다.
이와 함께 일본에는 정치 외교적으로 해결해서 양국의 이웃관계를 새로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나라 잃은 국민의 설움,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다.
징용과 징병, 위안부, 황무지 개척 등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그 시대의 아픔을 당했던 백성들에 대한 대한민국의 보상이 먼저 아닌가. “그때, 국가가 못나 제 역할을 못해 백성들이 고통을 당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상한다”라고 사과하고. 일본이 우리 국민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던 통한과 울분의 현장 군함도는 세계문화유산이 돼서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경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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