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

2018.12.04

오철환
칼럼니스트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은 없다.
태생적 위험부담이다.
이러한 운명적 상황에 대비하는 이성적인 헤징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보험이 바로 그것이다.
보험은 예상치 못한 죽음을 어느 정도 부보한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소득 없는 노후를 위하여 보험은 연금이란 새로운 영역으로 진화했다.
보험은 사적 영역에서 번성해 왔으나, 연금은 복지국가 등장과 함께 공적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가족과 효사상이 예로부터 연금제도를 대신해 왔다.
그러나 서구화에 따른 핵가족과 개인주의는 전통적인 노후생활을 위협하였다.
국가가 연금제도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배경이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은 국민연금을 복지의 핵심으로 올려놓았다.

국민연금이 비록 공적 제도라 하더라도 원초적으로 사적보험과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총체적으로, 유출 현금흐름의 현재가치 총화와 유입 현금흐름의 현재가치 총화가 일치하게끔 설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이 버틸 수 없다.
평균수명, 인구추이, 할인율, 연금지급액 등이 외생적 독립변수로 투입되면, 그에 따라 국민에게 부과될 금액이 종속적으로 확정된다.
기금운용수익은 플러스알파다.
이러한 연금 설계가 믿을 만하다면 국민연금은 독립적으로 지속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속변수는 정치권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객관적인 영역이다.

소득대체율(연금지급액), 최저지급액과 최고지급액, 연금개시연령 등 국민연금의 목표치는 여론을 수렴하여 정치권이 결정할 사항이다.
국민연금 시스템의 기타 일반적 변수는 통계학, 경제학, 수학 등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예측ㆍ추정ㆍ산출된다.
개개인의 납부금액과 연금지급액은 최종적으로 소득과 연금납부 기간 등에 따라 공정하게 정해진다.
이 절차는 실무적인 성격을 띤다.
물론 연금납부액이 국민들에게 만만찮은 부담이 될 것은 명확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받는 만큼 내야 한다.
소득이 있을 때 노후를 대비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국가는 국민의 노후를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

국민은 현재의 부담을 당연히 싫어한다.
그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감정적인 반응이다.
그렇지만 국가는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때 신뢰관계가 전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연금 개편이란 말만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입을 내미는 이유는 신뢰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연금을 보전하는 사태가 오고, 자식세대가 결국 바가지를 쓰게 된다는 불평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돈을 버는 곳이 아니고, 재물이 끝없이 나오는 화수분도 아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강제로 돈을 거둬서 필요한 곳에 쓰는 공권력이다.
거두지 않으면 쓸 돈이 없다.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
이것은 간단한 산수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받는 만큼, 정직하게, 그 부담을 지워야 한다.
지금 할 일을 미루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둑이 터지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친 정책은 허구다.
국민연금의 문제점을 안다면 지금 바로 고쳐야 한다.
국민연금 변수는 시기에 관계없이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정기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의 합의로 목표치를 변경할 수 있다.
연금수령액을 상향조정하거나 인구추이, 평균수명 등이 불리하게 변하면 부과금액을 올려야 한다.
부과금액이 적으면 차후에 세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태를 막아야 한다.

정치권은 목표치나 골격에 해당하는 부분만 정하고, 각종 변수는 시스템에 맡겨야 한다.
정치권은 표에 민감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의 유혹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뻔히 알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다.
국민에게 부담을 주어 표를 잃고 싶은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할 건 꼭 해야 한다.
정치권은 얼마를 받아야 노후에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면 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얼마만큼 부담시켜야하는지는 가치중립적인 시스템이 공정하게 수행한다.
누구도 욕먹을 이유가 없다.
각자의 범주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거버넌스가 모두에게 이로운 최선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지금 국민연금을 믿고 늙어가기엔 받을 돈이 너무 적다.
더 받아야 한다.
더 받으려면 더 내야 한다.
부담되더라도 소득이 있을 때 강제로라도 더 받아두는 것이 공권력이 할 일이다.
국민연금을 뜨거운 감자라 한다.
뜨겁다고 버릴 순 없다.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다.
오철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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