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잘 될 거야”

김종헌아동문학가

2018.12.04

김종헌
아동문학가

그는 나를 유현(裕玄)이라 부른다.
내가 중암(中岩)을 만난 지 1년여 지났을 때 그가 나에게 붙여준 별호다.
이렇게 그는 나를 알아봤는데 난 아직도 그를 표현할 의미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는 참 고집스럽고 인색하다.
그가 붓을 든 것이 열다섯 살 때라고 하니 어언 30년 세월이 다 되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것을 대학 때로 잡아도 25년의 세월은 훌쩍 넘긴 셈이다.
그런데 그동안 단 한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을 뿐이다.
그것도 황매산 어느 골짝에서. 그러니 어찌 인색한 사람이 아닌가. 인색한 사람 중에는 부자가 많다.
중암도 부자다.
붓이 많고 쓴 글이 참 많다.
또 쓸 글도 많다.
붓만 들면 글이 되고 그림이 된다.
지역 서예가들의 초대전이나 문하생들과 함께하는 전시회에는 그의 작품이 눈에 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고 또 써 둔 것들만 모아도 개인전 몇 번은 쉽게 했을 것이다.
‘부끄러워서’ 개인전을 열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호만큼이나 고집이 어지간함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개인전을 연다고 초대장을 보내왔다.

가끔 묵향이 짙은 서실에 들르면 여기저기 써 둔 글들이 돌아다닌다.
대문짝만 한 것에서부터 깨알 같은 글씨까지 글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글씨만 쓰는 게 아니다.
그림도 있다.
소나무가 보이기도 하고 아리따운 처녀의 얼굴이 달빛에 비치기도 한다.
온갖 동물들도 보인다.
또 어떤 것은 글씨인지 그림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것들도 있다.
게다가 알록달록 예쁜 색을 칠 한 것도 있다.
그의 작품은 그림과 글자가 만나 새로 의미가 만들어지는 ‘그림글자’들이다.
“이게 글자요?” 하고 물으면 씨익 웃는다.
다시 “그림을 그린 건 아닐 테고…” 하며 말꼬리를 빼면 그때야 전서가 어떻고 예서가 어떻고 하며 작은 눈을 더 작게 뜨고 진지하게 설명을 한다.
그러나 서예에 문외한인 나는 그런 설명이 한쪽 귀를 지나 바람 속에 떠돈다.
멋쩍게 눈을 글자에 고정시켜 둘 뿐이다.
그런데 중암의 작품은 그 글씨를 읽지 못해도 또 그 뜻을 새기질 못해도 재미가 있다.
그림 같기도 하고 글자 같기도 한 것이. 한참을 쳐다보면 글자의 모양과 의미가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서 또 묻는다.
“그림은 또 언제 배웠나? 글씨체를 만들기도 하나 보네.” 그는 이번에도 씩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틀에 갇히기를 싫어하지만 멋대로 만들지는 않는다며.
어느 분야이건 예술은 예술가의 내면에서 잉태된 생명의 기운이 밖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화선지의 하얀 공백을 메워가는 진한 먹이 풍기는 의미가 무엇일까. 분명 그는 문자를 빌려서 표현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 있을 텐데…. 언젠가 그의 서실을 들러 써 둔 작품을 미리 죽 훑어본 적이 있다.
넘기는 종이마다 언뜻언뜻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글자들이 몇 개 있었다.
閒(한), 善(선), 心(심), 無(무) 등이다.
모두가 한가하고 선한 이미지의 글자들이다.
나는 이제 이 낱글자들을 나름대로 묶어 그를 생각한다.
心과 無를 붙여 낱말을 만들면 무심(無心)이다.
‘욕심(心)이 없다(無)’ 아니 ‘욕심을 없애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불교에서는 허망하게 분별하는 삿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가리켜 무심이라 한다.
즉 온갖 그릇된 생각을 떠난 마음 상태, 그것이 무심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에 여유(閒)가 있으니 그는 반야심경을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그것도 서체를 바꿔가면서 몇 번씩이나 쓴 것이다.
이제 짐작이 간다.
삼십 년 붓을 잡은 그가 두 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잘 될 거야’로 제목을 붙인 것이. 그가 여태껏 붓으로 이룬 무심과 선을 드러내어 무한 경쟁의 돈 냄새에 찌든 현대인을 진한 묵향으로 감싸서 평안을 찾아주려나 보다.

최근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어려워 개인의 살림살이가 팍팍하다.
이러한 때에 그는 ‘잘 될 거야’라며 붓을 들었다.
이것이 어디 혼자만 잘 되려는 것이겠는가. 힘들고 지친 우리에게 내일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아등바등하기보다는 한 번쯤 쉬며 뒤돌아보기를, 그리고 늘 가진 것만을 꿈꾸며 못 가진 자를 얕보던 마음을 모두 내려놓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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