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서

발행일 2017-02-20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괴로울 때 힘들수록입꼬리를 한껏 올려 웃어라행복한 나의 삶을 위해서”



헬스케어혁신센터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새벽의 공기는 마치 냉동 창고 같다. 봄인가 싶더니 며칠 사이 세상이 온통 꽁꽁 얼어붙었다. 언제 눈이 내렸는가? 길에는 희끗희끗한 것이 보인다. 언 땅을 밟아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온몸으로 굴러 내려갈 것만 같다. 고양이처럼 조심스레 발을 옮긴다. 어둑한 새벽이라 어디가 안전한 땅인지 분간할 수 없으니 살금살금 걷는 수밖에. 슈웅 ~바람 소리를 내며 달려간다는 기차가 새로 단장한 역사로 들어온다. 차에 올라 좌석을 확인하고 자리를 찾아 앉아 보니 차창 너머엔 아직 어둠이 머뭇거리고 있다. 강남으로 가는 길이라 시간이 단축된다는 SRT를 탔다. 늦을 걱정을 뒤로하며 노트북을 꺼내었다. 문서를 열어 점검하고 미처 다 끝내지 못한 것들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기차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바다가 출렁이듯 속이 요동친다. 심호흡을 하고 등뼈를 곧추세워 똑바른 자세로 앉아 창밖을 보며 속을 달랜다. 자극이 심해 서울에 닿을 때까지 견딜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울렁이는 속을 진정시키려고 애써 보았다. 하지만 스치는 풍경이 눈앞에서 나비처럼 춤을 춘다. 구토로 이어지지 않도록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다 문득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아다녔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웃으라고 했지. 힘든 일, 참기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입꼬리를 한껏 올려 웃는 표정을 지으라고 했지. 그래 웃어보자.

괴로울 때마다 웃음부터 짓는다는 그녀의 사연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져 내리면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녀의 친정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슬픔에 젖어 겨우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삼우제가 끝나던 날이었다. 이번에는 시어른께서 하늘나라로 황망히 떠나가셨다. 주체할 수 없는 일이 자꾸만 이어지는 사이 그녀의 남편이 어느 날부터 물체가 두 개로 보이기 시작한다고 호소하였다. 갑작스레 엄청난 일이 연달아 날아들었으니 머리가 얼마나 터질 듯 아팠겠는가. 그녀는 남편의 손을 이끌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게 하였다. 하지만 처음 진찰한 결과로는 눈엔 큰 이상이 없고 염증만 조금 생겼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한다. 영양보충을 시작하고 안정을 취하도록 도왔다. 조금 증세가 나아지는 듯하여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몇 날이 지나지 않아 또 복시가 일어났다. 몇 달 뒤부터는 목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큰 병원을 찾아가 각종 검사를 다 해보았다. 전신을 샅샅이 정밀 촬영하여 보았더니 세상에나! 코와 인두부에 걸쳐 똬리를 틀고서 암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 녀석이 숨어서 야금야금 자라나 온몸에 퍼져 더는 손을 쓸 수 없게 되어 있었다고 했다. 커다란 슬픔이 줄지어 밀려들었으니 그녀 자신도 억장이 무너지고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 왔다. 울다가 쓰러지기도 하였다. 곧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가 밀려와 자신의 단골병원을 찾았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머릿속에 혈관 꽈리가 있다는 진단과 함께 던지신 말씀은 이러했다. “웃으십시오. 그래야 뇌압이 오르지 않아 살 수 있답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 입꼬리를 올리고 허허허 웃는 시늉을 하여 보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정말이지 슬픔에 잠겨 울었을 때보다는 머리도 속도 덜 답답해지는 것 같더라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그녀는 웃으며 산다.

살기 위해 웃는다는 그녀가 나의 울렁대는 마음에 위로가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웃기를 강조한다. 혼자서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용기를 주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음이 살아있는 행복 아니겠는가. 살기 위해서 웃어야 한다는 그녀가 나에게 또 명언을 전해준다. 사람이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로 말이다. “살고 싶은 대로 못 살고 보여주기 위해서 산 것, 가족보다는 일을 선택한 것,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지 않은 것,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것, 도전보다 안주를 택한 것이 후회하는 것”이라고 들려준다. 그녀의 말을 기억하며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리라. 최악의 상황에 대비는 하면서도 늘 최선의 희망을 잃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머지않아 따스한 볕으로 봄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때로는 붙잡고 있으려 해도 멀어져 가버리는 것들도 있지만,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모두 한번 웃어보자, 행복한 나의 삶을 위해서.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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