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생활의 균형 시대를 맞이하다

발행일 2017-09-19 20:14:2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일가정 양립’을 위한 특별기고<3>



2017년 정부가 발표한 100대 과제 중 71번 과제로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ㆍ생활의 균형 실현’이 제시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세계 15위권 이내의 경제적 규모를 갖게 되었고 비교적 튼튼한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의료보험제도를 갖춘 나라가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루어 놓은 성과에 비해 우리 국민은 그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왜일까? 시대는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경제적인 성장에 맞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데 우리 생활에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희생하면서 경제 성장을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려가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과 생활이 조화되지 못하고 공생공영의 삶에 대해 무관심해지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확대되었다. 개인에게는 저출산을 불러왔고, 기업에는 노사분쟁을, 사회적으로는 양극화 현상을 촉진해 소위 ‘묻지마 범죄’와 같은 예측불허의 사건이 늘어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경제적인 수준으로 봐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상위권에 있어야 함에도 OECD가입 국가 중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과 생활의 균형은 한 가지 극약처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장과 가정, 사회, 국가 모두가 참여하여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고 이것을 위해 법과 제도, 정책과 사업, 수용과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미래의 걱정거리가 된 저출산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일ㆍ생활 균형에 대해 일반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대구 지역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일ㆍ생활 균형이 가능한 직장이 되도록 지원하는 ‘가족친화경영 컨설팅’을 해보면 그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이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저희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두 번째는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요구하는 것이 너무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그게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까? 직원들도 돈 많이 주는 거 좋아하지 이런 거 싫어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기업의 반응은 첫 번째이지만 현실에서는 세 번째 반응이 가장 많다.

정책과 현실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그들에게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일ㆍ생활 균형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때가 되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럴 때는 먼저 직장환경을 진단한다. 근로기준법이나 가족친화적인 법률을 눈치 보지 않고 지키거나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인지, 법률에 없지만 직원이나 가족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는지 진단을 해보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임금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직원이 함께 모여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하는 직장과 그렇지 않은 직장은 의사소통의 역동성에서 차이가 난다. 그것을 하는 직장은 소통이 원활하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직장은 경직되어 있고 직원 간의 상호작용이 부족하며 노동과 임금에 집중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의무적인 법규를 지키도록 점검하고 예산과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가족친화적인 프로그램 도입을 권유하여 회사가 노동만 하고 임금만 받아가는 곳이 아니라 ‘동료와 좋은 인연을 맺고 성과를 내며 보람을 찾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도록 제안한다.

얼마 전 대구의 소규모기업에 가족친화경영컨설팅을 갔다가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기업의 가족친화 정도를 진단해보니 회사설립 이래로 배우자 출산휴가를 한 번도 간 사례가 없었다. 경영자는 “남자가 애를 낳는 것도 아닌데 왜 회사를 쉬어야 되냐!”며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3일 유급휴가에 2일 무급휴가 총 5일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례는 극소수의 사례이기는 하나 얼마 전 대구여성가족재단에서 발간한 ‘2017 통계로 보는 대구여성의 삶(2017.6.30.)’을 보면 여성혼인율(11.5%), 결혼 후 5년 이내 부부의 자녀 수(0.86명), 부부가 공평하게 가사를 분담하는 경우(13.7%) 등이 전국 7개 광역시 중 최하위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지역도 일ㆍ생활 균형 시대를 앞서서 맞이할 필요가 있다. 변화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이런 지역 상황을 극복하고자 대구광역시도 손을 걷어붙이고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2015년 3월 ‘대구일가정양립지원센터(이하, 센터)’를 설립하고 대구여성가족재단에 운영을 위탁하여 일ㆍ가정 양립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센터설립 이후 여성가족부가 인증하는 가족친화인증기업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누계 19개로 전국 최하위권이었는데 2015년에 35개, 2016년 56개로 중위권으로 도약하였고, 2018년에는 대구지역 가족친화기업 100개 시대를 열 예정이다.

그 외에도 센터의 일ㆍ가정양립아카데미에 남성의 가정경영교육, 청년과 육아엄마의 일ㆍ생활 균형(Work Life Ballance)리더 양성교육 등 자발적인 시민 참여가 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제 대구를 일ㆍ생활 균형의 실현이 가능한 도시로 만들어 저출산과 양극화와 같은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직장과 가정과 지역사회의 일ㆍ생활균형문화 정착을 위하여 박차를 가할 때이다.엄기복대구시 저출산극복 사회연대위원. 대구일가정양립지원센터 총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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