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집『어느 날 아침, 미쳐버리다』(들녘,2004)
일본의 현대시인 요시마스의 시 세계는 언어 자체에 대한 고민과 시의 한계에서 오는 세계에 대한 절망적 인식, 문명 비판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파국을 향해 치닫던 1939년에 태어난 그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세계대전에서 자신의 조국이 패망하는 걸 목도하였다. 또한 그가 자라면서 본 것은 전쟁의 참상과 후유증으로 피폐화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의 현대 문명을 향한 첨예한 비판 의식은 아마 그런 유년의 경험에서 영향받았으리라.
그는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 문명을 찢어버리자고 소리쳤다. 현대 문명이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기관차와 같아서 어떻게 하든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 끝에는 지옥의 참상이 기다릴 뿐이란 절망적 인식을 갖고 있다. 더구나 시를 쓴다는 것이 무슨 쓸모일까를 회의하며 ‘이제 언어에 의지하는 일 따위는 그만두자’고 한다. ‘인간이라는 문명에게 아무리 불을 빌려달라 하더라도 그것은 도저히 헛된 일’이란 것도 알기에 그의 절망은 고조되어 스스로 ‘어느 날 아침, 미쳐버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재앙을 재촉하는 것은 물질문명만이 아니다. 로마인들의 타락이 로마의 멸망을 재촉하였듯이 인간성의 타락은 인류의 문명을 뿌리째 흔든다. 그러므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인간 본성으로 회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제 아침 이윤택씨의 공개사과 기자회견을 보면서도 내내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의 말처럼 ‘부끄럽고 참담한’ 일들이 그만에게만 해당하지 않겠기에 말이다. ‘미투’ 운동은 아픈 상처를 치유하려는 인간의 본성 회복 운동이다. 가슴에 손을 얹어 조금이라도 찔리는 남성들이라면 스스로 광범위한 참회 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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