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와 빈곤

발행일 2018-04-17 20:58:2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가족 간에도 왕래 어려운 현대사회주변 여건보다 마음의 문 좁아진 탓마음 속 풍요 찾아 옛 인심 돌아보길”



개인적 일이 겹쳐 여러 지방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연일 강행군으로 체력이 한계에 부딪혔다. ‘경산에서 포항, 경주를 거쳐 울산 간절곶이라, 4시간은 넘게 운전해야 할 텐데, 갈 일이 태산 같구나.’ 별 의미 없이 넋두리를 하였다. 뜻밖에 경주에 사는 사촌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집에 오셔서 저와 같이 가시죠.” 동생은 경산서 울산까지 가지 말고, 경주 와서 자기 집에 자고, 같이 가자는 것이다. 동생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설였다. 폐가 될 것 같았다. 잠자리, 음식 등을 생각해보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생은 나의 망설임에 섭섭해하면서 재차 독촉을 하였다. “그래 생각해보자. 그때 가서 전화하자.”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절대 반대다. 손님 한 사람 오면 주부는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아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내 어릴 때다. 우리 집과 작은집은 아래위 동네에 살고 있었다. 나는 자주 작은집에 갔다. 작은집에는 감자와 옥수수가 있고, 앵두나 자두, 수박도 먹을 수 있었다. 여름날 밤, 마당에 깔린 멍석에 누웠다. 밤하늘에 별빛이 초롱초롱했다. 모기들이 극성을 부렸다. 작은아버지께서 마른 쑥으로 모깃불을 피웠다. 그 위에 젖은 풀을 올려놓았다. 매콤한 연기에 눈이 따갑다.

작은어머니께서 자못 성이 나셨다. “부산 삼촌은 방학에 왜 애들을 안 보내나? 모기에 뜯긴다고 안 보내나? 우리 애들 모기에 물려도 잘만 크는데.” 부산에 사는 조카들이 방학 때 작은집에 안 오는 데 대한 섭섭함이다. 작은아버지 내외분은 매년 방학만 되면 조카들을 기다렸다, 그때는, 친척 집이 우리 집이고 우리 집이 친척 집이었다. 시간만 있으면 서로 드나들었고, 아이들은 같이 자랐다. 같이 들로 산으로 돌아다녔다. 참꽃도 따 먹고, 소나무 새순도 꺾어 먹었다. 자치기, 제기차기 놀이도 하고, 밤이 되면 한 방에서 뒹굴었다. 그렇게 우리는 공동체의 삶을 살았는데 지금은 남남 간은 물론 가까운 친척 간에도 왕래가 없다.

친구가 서울 사는 아들 집에 자주 간다. 장가간 아들 집에 자주 간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알고 보니 서울에 사는 장가 안 간 아들 집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며느리 집에 어딜 감히.’ 이것이 요즘 사회현상이다. 우리네 인심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학교에서 핵가족 제도의 장점을 가르칠 때가 있었다. 시험에 나온다고 중점적으로 암기시켰다. 가족 구성원 간의 친밀감 증대, 가족 구성원 간의 민주적인 관계 가능, 가족 구성원의 독립성 확보 등이 그것이다. 반면 대가족제도의 단점도 가르쳤다. 유교 영향으로 자녀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복종만 강요한다. 가족들의 자립정신을 억누르게 되어 이타심을 기르게 된다. 여성들의 일이 많아지고 여자의 인권이 말살된다. 대가족제도는 천하에 못쓸 제도로 매도되었다. 오늘날 외부 세계와 단절 현상이, 이런 교육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산업사회의 맞벌이가 유죄라고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농경사회도 맞벌이 사회였다. 노동으로 보면 현대사회보다 더 심한 여성노동력 착취였다. 밤늦게까지 농사일을 하다, 저녁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길쌈을 하였다. 전기밥솥도 없었고, 세탁기, 식기세척기도 없었다. 눈길 얼음길을 물동이를 이고 다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좁은 아파트 생활을 이유로 들지만, 그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아파트의 방들은 전통 가옥에 비하면 대궐이다. 싱크대, 가스레인지, 전기오븐 등 편의시설이 있고 냉난방도 완벽하다. 손님이 오면 밥하기도 쉽고, 춥다고 따로 군불을 땔 필요가 없다.

풍요와 빈곤은 불교에서 말하는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다. 같지도 않지만 다르지도 않다는 것이다. 풍요는 매우 많아 넉넉함을 말하지만, ‘매우’의 경계선이 없고, 빈곤의 생활수준의 낮음도 ‘낮음’의 경계가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나의 풍요가 다른 이의 빈곤일 수 있고, 다른 이의 풍요가 나의 낮음일 수도 있다. 따라서 빈곤과 풍요는 같은 것이기도 하고 다른 것이기도 하다. 조금만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연다면 풍요와 빈곤을 널리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제 모두 마음의 풍요를 가질 때가 되었다.신동환객원논설위원전 경산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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