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漢盲化 할순 없다

발행일 2002-09-13 18:17:3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최근 우리나라 학생들중 한맹(漢盲)이 많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문제를 놓고 찬반논쟁이 일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글전용론과 한자혼용론의 뿌리 깊은 대립에서 시작하는 이 논쟁은 모두 나름대로 논리가 있고, 일장일단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한글전용론자들이 주장하는 한자폐지는 전통문화와 동양문화로부터의 고립을 초래하는 폐단을 초래할 것이란 한자혼용론자들의 주장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싶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과 중국의 관광객들에게 한글로만 표기된 간판이 얼마나 많은 불편을 주는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반대로 일본이나 중국에 여행이나 유학을 가서 한자를 읽지 못해 쩔쩔매는 우리의 젊은 한글세대를 볼 때 한자를 모르고서는 세계화시대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경쟁력을 잃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된다.

한자학습의 효과는 다방면에 영향을 미친다. 먼저 한자를 배우게 되면 어휘력이 풍부해져 차원높은 어휘를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글짓기에 큰 힘이 된다. 한자를 잘 익힌 학생에게는 글쓰기 순서와 요령만 지도하고 나면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수준높게 표현할 수 있다. 상황과 사실에 맞게 필요한 내용을 요령있게 쓸 수 있게 되고, 말의 뜻도 확실히 알면서 쓰게된다는 것이다.

또 한자학습은 국어과목 이외에 다른 과목 성적도 동시에 향상시킨다. 기초학력 향상의 길이 바로 한자 학습이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문의 폭이 더 넓어지게 한다. 어떤 이론이나 학문도 이해속도가 빠르고, 기억도 오래 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예를 들면 영주에 있는 `부석사`를 기억하고자 할 때 뜰 부(浮), 돌 석(石), 절 사(寺) 즉, 돌이 떠 있는 절이란 뜻으로 떠 있는 돌이 연상되면서 한 번 배우면 오래도록 잊지 않게 된다.

약간 다른 예를 든다면 몇 달 전에 막을 내린 한 TV 방송 드라마에서 ‘태평’이란 사람은 `왕건의 군사’로, ‘종훈’이란 사람은 `백제의 군사’로 소개됐다. 이 두 사람을 ‘군사(軍士)’가 아닌 ‘군사(軍師)’로 이해한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 이런 경우가 한자를 모르면 단어나 문장의 뜻이 잘 이해되지 않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우리 책들이 한글로 쓰여지지만 단어 구성 자체는 한자어가 대부분인 만큼 한자실력없이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한자실력이 우수한 사람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정도가 높아 독서하는 데도 큰 힘이 된다. 이같은 점들이 고려되어선지 최근 한자를 쓰고, 읽는 한자능력검정시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할 만한 일이다. 지난 92년 12월 처음 실시된 한자능력검정시험은 2001년 5월 18회 시험부터 국가공인시험(1급-4급)으로 바뀌어 치러지고 있다. 대학생과 일반의 경우 전체 3500자의 한자를 불편없이 읽고, 쓸 수 있는 정도를 1급으로 인정하게 된다.

한자능력 검정시험에서 급수를 따게 되면 초∙중∙고등학생은 생활기록부에 등재해주고, 대학입시 면접가산, 학점 반영, 졸업인증 등의 혜택이 있으며, 군에서도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조선일보의 경우에는 3급이상인 경우 기자채용때 우대하고 있다. 대구에서도 이같은 한자능력검정시험이 오는 11월 2일 대경대 사회교육원 등 몇 군데에서 동시에 치러진다니, 반가운 일이다.

한자는 외국어가 아니다. 한자(漢字)와 한문(漢文)과는 다른 것이다. 한자는 우리 역사속에 녹아있는 우리 말이며, 우리 단어다.

젊은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에 녹아있는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을 한맹(漢盲)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교육현장에서 1972년에 제정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한문’시간이 아닌 초∙중∙고교 ‘국어’시간에 가르치는 교육계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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