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채무도 탕감해주나

발행일 2002-11-02 12:08:4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부가 ‘낭비’ 때문에 진 개인채무까지 탕감해 줄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하기로 했다. 따라서 그동안 낭비 규정에 해당돼 채무 면책 허가를 받지 못했던 파산자들이 회생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회를 맞게 됐다. 그러나 낭비로 인한 파산자까지 법으로 구제할 경우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마련한 ‘통합 도산법’ 시안에서 기존의 파산법에 들어 있던 ‘채무 면책 불허가 사유’에서 ‘낭비’항목을 삭제했다. ‘낭비’의 개념이 모호한 데다 이 규정 때문에 채무 면책 허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파산이란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을 경우 법원의 도움을 받아 빚을 청산하는 것이다. 이 때 법원으로부터 채무 면책 허가를 받으면 빚을 탕감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기존의 파산법은 ‘낭비’ 또는 도박 등의 사행행위로 진 빚이나 10년 이내에 면책 허가를 받은 경우, 재산 은익 등 불순한 목적이 있을 경우 등은 면책을 불허토록 규정하고 있다.

파산법은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채무를 정리해 줌으로써 그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만큼 ‘낭비’항목까지도 삭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낭비’라고 규정할만한 객관적 기준도 모호해 경우에 따라서는 파산자가 동의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채무 면책 허가를 할 수 없는 경우에서 낭비 항목이 빠진다면 이 제도를 악용하여 채무를 면탈받으려는 악의적인 채무자가 늘어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낭비’해서 빚을 지더라도 법으로 이를 탕감해준다면 낭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매며 성실하게 빚을 갚아오고 있는 대다수의 채무자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또한 이렇게 될 경우 금융거래에도 큰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에서 파산선고반 받아도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않으려 하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면책 허가까지 확대할 경우 금융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가 있을 것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이 법무부의 ‘낭비’ 항목 삭제 방침에 반대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이다.

실제로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낭비벽’이 있다는 것이 법원 관게자들의 설명이다. 직업이 없는데다 재산과 수입도 없으면서도 빚을 내서라도 쓰고 본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빚을 지고 파산이 선고돼 각종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국가가 이를 구제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악의적으로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나 성실 채무자를 악성 채무자로 만들 수 있는 조치를 정부가 취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이번 일은 금융거래의 질서를 깨트릴 수도 있는 사안이다. 정부는 보완책을 강구하는 등 신중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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