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군수할래, 국회의원할래?

발행일 2003-07-27 19:16:4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대구시 구청장과 경북도 시장∙군수들 중 몇몇이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단체장 사퇴시기를 견주고 있다. 국회의원 출마가 거명되는 자치단체장들은 거의가 3선의 장들이다. 이들은 다음 단체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에, 어찌보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최상의 선택처럼 보인다.

원론적으로는 구민이나 시민들이 당선시켜준 단체장 직을 임기 전에 던져버린다는 것은 주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비난받아 마땅하다. 자신들이 지난 번 단체장 선거 때, 1년 반 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다음 수순이란걸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 그러니 어떤 이유를 갖다붙이든 ‘이기적인 결정’이라는 비난을 면키는 어렵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런가. 현실이 그들은 변화해준다.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

만약 당선 가능성만 있다면, 초선 재선 단체장 중 국회의원에 출마할 장들도 꽤 있을 것이다. ‘구청장이나 시장보다 국회의원이 더 좋은가’라는, 다소 바보처럼 들리는 의문을 제기해보자. 이런 질문 속에는 단체장 한 명의 선거구에 국회의원이 두 명, 혹은 세 명이 나오는 선거구도 있다. 이런 경우 시쳇말로 국회의원 두세 명이 있는 지역의 단체장과, 그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회의원 중 어느 것이 좋은가, 하는 현실적 관심이다.

시장 구청장이나 국회의원은 직급상 누가 높은가?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 기관으로 차관급 혹은 장관급으로 여겨진다. 단체장은 선거직이니 예전같이 직급이 있을 수 없다. 부단체장의 차상급으로 예우받고 있다고 볼 때, 시장 군수 구청장의 경우 대부분 3급에서 1급 수준이 될 것이다. 단체장이 임명직이었을 때, 국회의원은 국정감사와 국정조사권, 그리고 예산심의 의결권 등을 통해 시장 군수의 ‘할아버지’뻘인 내무부(오늘날의 행정자치부)를 닦달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전혀 다르다.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 둘 다 민선으로 선출된 주민 대표이다. 법률로 임기가 보장되어 있다. 장관이나 대통령이라 하여도 임의로 인사조치하거나 해임하지 못한다. 게다가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위상이 전에 같지 않다. 지역의 행사가 있을 때도 단체장이 상위 자리냐, 국회의원이 상위자리냐 하는 일에 관계 공무원들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

자치단체장 선거 때 정당 추천을 받는 것이 유리하니, 형식적으로는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쥐고 있다. 하지만 현실관계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정당 구조의 문제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단체장이 뽑히고 난 후 서로 정당이 다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정당이 같은 경우라 해도 밀월관계가 아니다. 예전 같으면 국회의원이 민원을 얘기하면 단체장이 알아서 처리하던 것을 이제는 툭하면 ‘주민정서’ 운운 하며 발을 뺀다. 때로는 공천헌금이나 지구당운영비 등과 관련해서도 시비를 걸어오고, 해당지역 국회의원들을 무시해 버리기도 한다.

같은 유권자로 구성된 정치공간을 공유하니 두 사람이 서로 불편해 할 때가 있다. 경북도의 시장 군수는 좀 다르지만, 대구시 구청장 한 명에 국회의원 수가 더 많다. 단체장들은 강력한 국회의원 후보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단체장은 지역활동 면에서 국회의원보다 유리한 점도 많다. 동원이 가능한 예산과 인력이 있고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다.

국회의원은 상당기간 지역을 떠나 활동해야 하지만 단체장은 4년간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면서 “옆 지역의 국회의원은 어떤 데 우리 지역의 국회의원은 이렇다”고 한마디 던지기도 한다. 국회의원도 같은 지역에서 총선에 출마하려는 단제장을 견제해야 한다. 이래서 자치단체장들과 국회의원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되고 지역행사에서는 ‘적과의 동침’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치단체장들이 사퇴를 하고 총선에 출마할 경우, 현역 국회의원들과 공천 경합을 벌여야 하는 곳이 많다. 물론 무소속도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나라당 공천이 중요하지 않느냐는 소리가 높다. 민주당도 이 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자치단체장들 중 당선 가능한 인물을 영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미 모두들 결심을 굳혔고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총선 현장이 눈에 선하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문제로 군 전체가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다는 부안군의 김종규 군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군민 전체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자 “인구가 줄고 미래가 안보이는 부안군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 누군가가 짐을 짊어져야 한다. 훗날 사람들은 나의 결정이 옳았음을 알아 줄 것”이라고 외쳤다. 우리 지역 단체장들도 이런 각오를 갖고 출마 결정들을 내렸을까?

박원복<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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