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히 남을 해칠 자유는 없다

발행일 2017-02-14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헌법은 학문·예술의 자유를 규정그러나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남을 해칠 자유는 누구도 없다”



지난달 국회회관 로비에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더러운 잠’이란 작품이 전시되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누드로 침대에 누워 있는 주인공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온도 차는 존재했지만 대부분 너무 지나치다는 반응이었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은 전시회를 주선한 표창원 의원을 징계 조치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소동이나 가십거리 정도로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심각한 명예훼손 또는 뿌리 깊은 여성차별로 볼 수도 있다.

‘올랭피아’는 에두아르 마네의 누드화로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고 그렸다고 한다. 창녀로 보이는 여인이 온몸을 드러낸 채 비스듬히 누워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발치에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쳐든 채 눈을 번득이고 있으며, 흑인 하녀가 손님이 보낸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1865년 파리의 전시회에서 비난과 혹평을 받았으나 지금은 마네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구영의 ‘더러운 잠’도 지금은 비록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평가가 바뀔 것이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표창원 의원의 경우는 이구영 작가와 매우 다른 입장이라고 본다. 이 패러디작품을 국회라는 공적 무대에 끌어들여 정쟁의 도구로 악용하려 했다는 비난과 대통령의 여성 성을 폄하했다는 질책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술의 자유는 자유로운 인격의 창조적 발현을 위한 주관적 공권이기도 하지만 문화국가원리에 기초한 제도로서의 예술을 보장하여야 하는 객관적 가치질서로서의 성격을 아울러 가진다. 하지만 예술의 자유도 무제한적일 수 없고 그 제한과 한계가 엄존한다. 타인의 권리와 명예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제한과 한계다. 또 음란성이 인정된다면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한다는 측면에서도 그 제한이 불가피하다. 예술성과 음란성의 구별 기준이 무척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시대적 기준으로 보아 여성 대통령의 누드화는 아직 음란성 쪽으로 여론이 쏠리고 있는 모양새다.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의 바탕이 되는 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이 보호하는 중요한 기본권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도 헌법이 보장하는 또 다른 기본권에 의해 당연히 제한받는다. 표현의 자유는 ‘사생활의 보호와 자유’라는 기본권에 의해서도 제한받는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본권이 충돌할 때에는 이익형량의 원칙이나 규범조화적 해석의 원칙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가치판단적 재량이 개입할 수 있겠지만 여성 대통령 누드화는 사생활 침해라는 법익에 악센트를 둘 수밖에 없다고 본다. 상대방에게 돌이킬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침해를 주고, 영속적이고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는 결과가 누구라도 쉽게 예측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익의 이론이나 공적 인물의 이론도 있긴 하다. 공익의 이론이란 공익에 부합하는 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도 공개될 수 있다는 것이고, 공적 인물의 이론이란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 등의 사생활은 일반인과 달리 사생활 공개를 수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의 누드 공개가 공익에 부합하는 것도 아니고, 여성 대통령이 비록 공적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누드 공개까지 수인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성 대통령 누드화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이는 여성 차별이고 여성 성의 모독이다.

여성 대통령 누드화가 큰 물의를 불러일으킬 작품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을 텐데, 그것을 굳이 국회회관 로비에 전시한 점은 예술성 제척 사유라 할 만하다. 이구영 작가의 작품 전시를 예술적 행위로 보지 않고 정치적 행위로 보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또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더욱 완벽하게 누리려 했다면 모델에게 허락을 받고 모델료를 지불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백보를 양보해도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이구영 작가가 주장할 수 있는 기본권일 뿐 표창원 의원이 주장할 권리는 아닌 것 같다. 물의를 일으킬 줄 알면서 국회 로비에 전시를 주선한 표창원 의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무단히 남을 해칠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오철환대구시의회경제환경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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