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문시장에서 큰불이 났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10여 년마다 한 번씩 큰불이 나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그런 일을 보고 있노라면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땜질식 해결을 하다 보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도 없지 않다. 화재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중년의 아주머니 두 분이 병원을 찾아왔다. 그 중 한 사람은 이마 한가운데 반창고를 큼지막하게 붙이고 있었다. 반창고를 떼고 보니 5cm 정도의 기다란 움푹 팬 상처에 아직 진물이 채 다 마르지 않고 있는 깊은 상처라서 제법 치료기간이 필요한 상태였다.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분은 서문시장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이었다. 얼마 전 발생한 큰 화재 탓에 점포가 전소하면서 심적인 충격을 너무 심하게 입어서 스트레스로 고생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마 한가운데 물집이 잡히면서 통증이 심해졌다고 한다. 근처 피부과에서 대상포진이라는 말을 듣고 한 달이 넘도록 치료를 했는데, 상처가 제대로 낫지 않아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진물이 채 가시지 않은 커다란 상처가 이마 한가운데 생겨 반창고를 붙이고 다니자니 보는 사람마다 입을 대서 곤란한 지경이 된 것이다. 일단 한 달이나 지속하는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고 나을 수 있도록 상처치유 속도를 높여 주었다. 치료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상처는 다 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 한가운데 생긴 기다란, 움푹 팬 흉터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이 상처가 흉터처럼 주위의 피부를 잡아당기면서 양쪽 눈썹 사이의 미간 부위에 마치 한자의 내 천 (川)자처럼 깊은 주름이 패게 하고 있었다.
2주 정도 지나고 나서 상처 주위의 붉은 염증 기운이 일단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상처로 생긴 흉터를 제거하기로 계획하였다. 기다란 상처가 여러 갈래로 퍼져 있는데다가 주위의 피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섣불리 잘못 제거했다가는 피부가 모자라는 부분이 생겨 제대로 봉합이 되지 않을 위치라서 며칠 동안 여러 장의 그림을 그려가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했다. 수술 당일, 고심 끝에 도안한 대로 상처 주위에 디자인을 하고 나서 마취를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흉터 조직을 깊은 부위까지 완전히 제거하고 예전의 건강한 피부조직만 남겼다.
수술 후 모습을 본 환자는 흉터가 없어진 것에 대해 일단 안심을 하는 모습이었다. 며칠 후 실밥을 제거하고 나니 움푹 패어서 흉측했던 흉터는 모두 사라지고 가느다란 실선만 남아있는 모습이 되었다. 환자는 흉터가 사라진 것에 위안을 받았다. 상처 때문에 한 달이 넘도록 이마에 붙이고 다니던 반창고를 이제야 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창고만 보고 있으면 불길 속에 타들어가는 자신의 점포를 멀리서 애타게 바라보면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자신을 떠나지 않았는데, 반창고도 떼고 재기할 준비도 할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앞으로 시간이 걸리겠지만, 흉터 치료도 세심하게 해 준다면 이마의 상처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될 것이고, 마음의 상처 역시 함께 치유가 될 수 있으리라.
진료실에서 면담하다 보면 사고, 혹은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일들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환자들을 만날 수 있다. 모든 만남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마음의 상처를 가진 환자들에게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나를 찾아온 환자들에게 과연 나는 어떤 의사였는지…. 나에게 주어진 작은 재주를 가지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봉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의사로서의 보람이 아니겠는가.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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