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계란 껍질에 앉아서』(시문학사, 1998)
그제는 여름이 절정기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초복’이었다. 늘 그랬듯이 복달임으로 삼계탕 집은 붐볐고 ‘마니아’들은 삼삼오오 보신탕 맛집을 찾았다. 복날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으뜸으로 꼽은 연유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한여름 기력을 되찾기 위해 단백질 공급원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옛날 먹을 게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인지라 자연히 집에서 기르는 개와 닭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고 그 가운데 개는 나눠 먹기 딱 좋은 크기였겠다. 조선후기 서양 선교사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도 이 개고기였다. 그래서 가톨릭과 보신탕은 꽤 깊은 유대가 있다.
물론 동의보감에도 ‘개고기는 오장을 편하게 하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여 기력을 증진한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 땅의 개고기 도축은 여전히 불법 상태다. 해마다 합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어 왔으나 개는 단순 가축이 아니라 오랜 기간 사람들과 함께한 반려동물이기에 보신탕 문화를 쉽사리 용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걸 먹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분위기마저 있다. 시인이 어린 시절 목격한 ‘검둥이’를 때려잡는 야만적 장면은 트라우마가 되어 세월이 한참 흘렀음에도 ‘내 젓가락은 동그라미나 그리’며 개고기를 입에 댈 수 없도록 했다.
집에서 애지중지 애완했던 개가 발기발기 찢어져 탕 그릇에 담긴다는 생각만으로 소름이 돋았으리라. 나도 어린 시절 쥐약 먹고 뻗은 이웃의 개를 불에 거슬려 털을 벗겨 내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심정을 알 만하다. 하지만 내가 먹지 않는다고, 도저히 먹을 수 없다 해서 남이 먹는 것까지 반대하고 혐오하는 것은 온당한가. 이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오래전 한 프랑스 여배우가 야만국으로 규정하면서 우리들의 입맛까지 관리하려 들었던 어이없는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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