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말 / 정양

발행일 2017-09-17 19:56: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 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 시집『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창작과 비평사,1997)

시를 참하게 보일 요량으로 부러 시어를 치장할 필요는 없다. 고운 말로 써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힐 이유도 없다. 말랑말랑한 낱말로 조합된 시라고 해서 정서가 고양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시어가 시에 어떻게 스며들고 시의 맥락에 얼마나 충실히 기능 하느냐가 관건이다. 시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뱅뱅 겉도는 미사여구보다는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시펄”이란 막말 한 토막이 ‘손등에 얼음조각’을 올려놓은 것처럼 더 저릿하다.

성층권에서나 내려다봐야 읽힐 정도로 대문짝만 하게 쓰진 모래 위 글씨는 외계인과의 내통을 위한 나스카 유적의 기호처럼 은밀하다. ‘정순’이란 여인은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동선을 잃어버린 옛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왜 철 지난 바다에 홀로인지, 모래 위에 대문짝만 한 육두문자를 비뚤비뚤 썼는지, 누가 읽어줄 것인지 불가사의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속살이 순수한 남자의 이미지를 가진 황정민이 나오는 어느 영화 속 장면이 생각난다.

‘사랑해!’라는 교양인의 평범하고 상식적인 표준어를 버리고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내동댕이친 이 막무가내식의 사랑은 ‘정순’을 위해서라면 뭐든 못할 게 없고 세상의 모든 금기도 뛰어넘을 태세다. 그래서일까,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무지막지한 순정인가. 하지만 되레 무식한 건 저만치서 번득이면서 달려오는 밀물이다. 정순이가 못 읽으면 하늘이 읽고 하늘의 구름이 읽고 지나가면 바다가 와서 한 입 삼켰다가 토해낸다.

이윽고 큰 파도에 밀려온 밀물이 단숨에 삼켜버리는 “정순아보고자퍼죽겄다씨펄”이란 토막말에 눈물이 핑 돈다. 바다의 가슴도 가을이 다 가도록 저리고 아렸겠다. 끝없이 배회하다가 저녁놀 속으로 진저리치며 사라진 저 아름다운 막말이라니. 투박한 한 사내에게서 아픈 마음을 쏟아내게 하고 떠난 ‘정순’은 누구인가?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에서 외롭고 쓸쓸한 사내의 마음을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 저녁놀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내 어머니 이름도 정순이다. 이 계절 보고 싶은 사람이 그 김정순 여사밖에 없으니 나도 참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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