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과 역, 여객선부두 등에는 한아름 선물상자를 껴안고 오가는 가족 단위 귀성객이 넘쳐난다. 친, 인척들 모두 한집안에 모인다. 아침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에게 세배를 올린다. 떡국을 먹으며 덕담과 정을 나눈다. 아름다운 설날 풍경이다.
과거 1970년대에는 정권 차원에서 세계 공용 ‘양력’ 정착을 위해 ‘신정’을 쇠도록 강요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농경사회 전통이 뿌리깊은 우리 민족은 신정을 피하면서까지 설을 소중히 지켰다. 이런 정서는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세계인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지나친 변화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기보다는 놀고먹고 쉬는 날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는 결혼을 기피하는 청년세대와 이혼가정 급증, 성평등 확산으로 인한 독신가구 증가, 효도 개념의 희석 등 사회 변화가 주원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연휴기간 첫날 귀성보다는 해외 여행을 택한 가족들로 공항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조상 차례를 콘도 등 여행지에서 지내는 가족들도 부지기수다. 윷놀이, 연날리기 등 전통놀이보다는 노래방과 게임방 영화관을 더 찾는다. 물론 설이라고 해서 오랜 전통문화와 관습만 고집하고 강요하는 모습도 바람직하진 않다. 그러나 설에는 우리가 앞으로도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의미가 엄청나게 함축돼 있다. 이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타인의 시선과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다 보면 제멋대로 행동하게 된다. 서구에서 나 홀로 구상해 몰래 저지르는 범죄가 만연하는 이유다. 가족공동체에서 지켜지는 전통과 풍습은 개개인에게 구성원임을 늘 일깨워준다. 개인 존재 의미가 일상의 삶 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차례와 세배 등을 번거롭고 귀찮다고 해서 현대사회와 걸맞지 않은 인습으로 여겨선 안 된다. 서구에서도 설 전통과 풍습을 부러워한다. 이처럼 뜻깊은 설을 왜 함부로 놀고먹으며 지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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