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날이 활짝 열렸다. 음력으로 또다시. 이야기꽃을 피우던 반가운 얼굴들이 연휴를 보내고 돌아갔다. 새로이 해를 맞았으니 또 한 번 더 산뜻하게 꿈과 희망을 새롭게 다 잡아 야무지게 살아가야 하지 않으랴. 한껏 목청을 돋우어 노래하는 까치들의 노랫소리에 힘을 얻어 양 어깨 위에 묵직하고 커다란 희망의 깃발을 높이 내걸며 발걸음을 옮긴다. 담장 너머 목련 나무 마른 가지 끝에서 꽃망울이 뾰족이 고개를 내민다. 차가운 공기와 얼어 있던 땅속에서도 부지런히 길어 올린 꽃을 향한 정성 덕분이지 않겠는가. 새들은 창공을 날아다니며 우지진다. 누구 왔다 갔느냐, 잘 지내고 있더냐? 안부를 확인하나 보다. 산마루를 넘어온 환한 햇살에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모두 포근히 녹을 것만 같은 날이다. 새로이 시작하는 아침, 무조건 희망으로 시작할 일이다.
명절 때면 만나는 아이들이 쑥쑥 자라 이제는 몰라보게 되어간다. 가장 어린 조카도 기어다니다 걷더니 이제는 말도 청산유수처럼 해댄다. “큰어머니~~”라며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기에 대견하여 번쩍 안아주었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장난감 로봇, 베틀 타워 세트 사주세요~. 큰어머니!” 녀석의 달짝지근한 목소리에 반하였다가 커다란 펀치를 맞았다. 녀석의 간절한 얼굴을 보며 나도 깜짝 놀랄 조건을 내걸었다. “큰어머니 대신에 ‘큰누나~!’라고 불러주면 내가 원재에게 베틀 타워 세트 사주지~.” 그러자 녀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큰 소리로 불러댄다. “큰누나~ 큰누나~ 큰누나!” 깜짝 놀란 식구들의 표정은 어리둥절하다. 순식간에 사태를 파악하였는지 그만 웃음보가 터진다. “큰누나치곤 너무 나이 차이가 크지 않으냐, 큰할머니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판에 큰누나~! 라니” 하면서 깔깔댄다. 웃음 반 울음 반의 얼굴이 되어 데굴데굴 구른다. 박장대소가 이어진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할 정도로 웃어대는 이들 덕분에 어느 해보다 더 흥에 겨운 설날이었다. 나는 호칭을 큰누나로 강요하면서 스스로 기쁜 마음이 되어 아이 손을 잡고 마트로 향하였다.
집안 큰누나는 언제나 동생들을 챙겨주지 않던가. 시댁 사촌 큰누나도 동생들에게 마음의 선물을 보낸다. 직접 농사지은 것으로 따로 모아서 보내주곤 하시던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나도 시댁 큰누나의 마음으로 어린 조카에게 선물을 사주리라. 큰딸은 집안의 살림 밑천이라고도 하지 않은가. 맏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고, 아버지는 내게 일러주곤 하셨다. 덕이 있고 마음이 어진 아이가 맏딸로 태어난다고. 복은 큰딸이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믿으시는 것 같았다. 시어른도 말씀하셨다. 종가 맏며느리도 하늘이 점지해주는 것이라고. 주요한 자리인 종가 맏며느리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늘 기쁜 마음으로 아랫동서와 시댁 조카들에게 큰누나가 된 마음가짐으로 잘 보듬어 주고 극진하게 살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린 조카의 장난감에 대한 욕심 덕분에 얻은 호칭인 “큰누나”. 모처럼 나도 마음으로 베풀어주는 넉넉한 큰누이의 마음이 되어본다. 직장에서도 누나! 누나! 부르면서 따르는 직원을 보면 더 살갑고 챙겨주고 싶은데, 하물며 집안에서야 큰누나는 더 의미가 크지 않으랴. 큰누나는 어쩌면 가장 푸근하고 넉넉하고 바른 인품을 가진 여자 어른의 표상일지도 모르겠다. 나이 어린 조카 덕분에 희끗희끗한 나의 머리가 어느새 소녀 감성이 되어 간다. 산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한참이나 더 많은 새파란 꿈을 가진 청춘으로 다시 태어나 더 팔팔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으랴.
나이를 더하지만, 마음만은 젊어지는 삶을 살고 싶다. 봄이면 배꽃이 다시 예쁘게 피어나듯이. 행복은 추구하는 자의 것이지 않은가. 따스한 사랑을 서로 주고받는 희망 가득한 봄이 되기를 소망한다. 산뜻하게 젊고 행복한 봄을 맞이하자. 모두 큰누나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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