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

발행일 2017-07-11 20:18:4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나는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합니다. 내가 평생을 바쳐 해온 이 일이 의미 없는 것이 될 수는 없지요. 암, 그렇고 말고요.” 노(老) 신부님이 강론 중에 하신 말씀이다. 신부님은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직자로서 자신이 해온 일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적인 삶에 일생을 바친 신부님으로서는 자신의 삶과 행동, 성직(聖職)의 중심에 하느님을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성직자들이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외친다. 그러나 하느님의 존재 여부는 신자는 물론 성직자도 알기 어렵다.

“하느님은 저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천국, 영혼. 왜 이것들은 단지 말일 뿐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요”, “저는 끔찍한 상실의 고통을 느낍니다. 하느님이 저를 원하지 않으시며 하느님이 하느님이 아니시라는, 하느님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고통 말입니다.”

어느 신자의 고백이 아니다. 인도 캘커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여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돌아가신 후에 성인(聖人)으로 추대된 마더 테레사 수녀의 고백이다. 마더 테레사는 성직에 종사하는 거의 내내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상실감에 시달렸다. 서거 후 발간된 서간집(書簡集) ‘나의 빛이 되어라’에도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가 여기저기 드러난다.

하느님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것이 성직의 참 의미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성직의 참 의미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이를 앞서 실천하는 것이다. 종교학자 배철현은 그의 저서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종교는 오랫동안 신념체계로 오해됐다고 지적한다. 종교에서 무엇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교의 가르침을 행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가르침은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일하고 사람과 더불어 사는 일이다.

아무리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한다고 해도 실제 생활에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확신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면에 마더 테레사 성인처럼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평생 회의했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여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했다면 올바른 성직자의 삶을 살았다고 할 것이다.

성직에만 한정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직업을 통해 금전적인 소득만이 아니라 일정한 가치를 추구한다.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호텔 직원이든 경영자이든 누구든지 마찬가지이다. 직업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 될 때이다. 그러나 직업의 의미는 직업이 추구하는 가치 자체에 있지 않다. 가치의 존재 여부나 확신에도 있지 않다.

직업의 참된 의미는 그가 그 일을 통해 이웃,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무엇을 주었는지에 있다. 예컨대 정의(正義)를 다루는 법률가로서의 직업을 수행함에 그가 정의의 존재에 대해 판단이나 확신을 하는 것과는 별도로 그가 자신이 직접 부딪히는 사람들을 정의롭게 대하고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일했느냐는 것이 그의 직업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예배(禮拜)는 히브리어로 ‘아보다(avodah)’이다. 배철현 교수는 이 단어가 경배/예배뿐만 아니라 노동/직업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다른 두 개념 ‘신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과 ‘직업으로 노동하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고대 히브리인들에게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예배는 영어성경에서 ‘서비스(service)’라는 새로운 단어로 번역되었다.

서비스는 아보다의 두 개의 의미가 들어 있다. 직업의 가장 큰 의미는 사람에 대한 봉사 곧 서비스이다. 직업을 통해 사람에게 서비스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행위이자 하느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행위이다. 라틴어 구절 “Laborare est orare(라보라레 에스트 오라레)”가 이를 나타낸다. “일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다.”윤정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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