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 최영미

발행일 2017-09-12 20:12:2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귀퉁이는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중략)/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비, 1994)

운동보다는 운동가를, 술 보다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 잔치도 끝난 마당에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여기서 ‘이 시대’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가 마감되고 이 땅엔 형식적으로나마 긴 군사독재가 종식된 시기다. 적어도 운동권에선 강력한 동기부여가 사라졌던 것이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수면 아래로 침잠한 저항의식은 깊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했다.

진술은 ‘사실관계(fact)’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고백은 ‘진정성(truth)’을 무릎 꿇고 알리는 것. 그렇다면 사랑의 고백 역시 사랑한다는 사실보다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통째로 드러내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가슴이 없는 시대, 가슴을 펼쳐보여도 등을 돌리는 이 삶의 정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성한 두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성의껏 달래면 피막대기도 세울 수 있는데.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기어이 ‘너에게로 가는 길’에 갖다 바칠 것이 호텔방밖에 없었던 걸까. 이건 좀 부담스러운 편견일지 모르겠으나, 그의 이력만으로도 그 콧대의 높이를 짐작한다만 그 방편이 수영장 딸린 럭셔리한 호텔방이라면 너무나 속되지 않는가. “아무 곳에서나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나”라고? ‘내일도 나는 광야에 홀로 서 있을 것’이라고 했던 시인의 태도로 믿기지는 않는다.

공짜가 아니라 “홍보를 끝내주게 해주겠다”며 제시한 게 고작 “호텔 카페에서 주말에 시 낭송도 하는”것이라는데, 매우 고상한 발상이긴 하지만 정말 현실적으로 먹혀든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사람이 좀 모이면 호텔 측에 득이 되리란 순진한 생각을 했던 걸까. 시인이 메일을 보낸 ‘아만티 호텔’이 젊음의 해방구 홍대 근처에 위치한 호텔이란 점을 감안하다면 누구라도 이 제안의 비현실성을 알 수 있으리라.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 안 그런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다섯이라면 부정적인 것은 열 개도 넘어 보인다. 무엇보다 자신을 과대평가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적절치 못했다고 그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며 과거 운동권의 순수성을 뒤엎는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그가 호텔방 바람을 일으켜 그 제안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도로시 파커가 머물렀던 뉴욕의 호텔처럼 문화생산의 전진기지쯤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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