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친구

발행일 2019-01-08 19:51:1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 그는 학문에 대한 소양이 넓고, 토론도 조리 있게 잘하는 친구다. 공부도 많이 해서 서울의 사립 명문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교원이 갖추어야 할 현장 연구 실력도 탁월하다. 천학비재인 내가 그를 연모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는 교육학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도 대단하다. 철학, 역사, 기초과학과 고전에 이르기까지 만물박사다. 나는 그를 신판 양주동 선생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그는 학생 가르치기를 소홀하지 않았다. 각종 학력고사나 경진 대회에서 그가 가르친 아이들이 최상급의 성적을 내어 학부모가 담임으로 모시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결점이 있었다. 그는 똑똑한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소신파이다. 본인이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굽히지 않는다. 연수회나 사석에서 그와 반대 의견이 나올 때 그의 불같은 성격이 나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선시대 임금 앞에 목숨을 걸고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는 선비들을 상상하게 된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의견 대립이 많을 텐데 스트레스는 얼마나 많이 받았을까.’ 그런 그가 안타까웠다.

그의 또 하나의 단점은 생각이 많고 소심하다는 것이다. 의사 결정을 한 번에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자니 본인도 피곤하고 다른 사람도 피곤하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탈이다. 따라서 일의 추진 속도도 느렸다. 소심하면 몸에 안 좋은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이 알고 똑똑하던 그도 병마에는 별수 없었다. 공직에서 퇴직 후, 몸 쓸 병마가 그를 덮쳤다. 나는 그가 공직에서 너무 과로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모든 일에 소심하게 일하다 퇴직으로 긴장의 끈이 놓인 것이 이유라고 생각한다.

모임이 있어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만나고 보니 걱정하던 것보다는 몸이 좋아 보였다. 반가 왔다.

모임이 끝나고 둘은 조용한 찻집에 갔다. 가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의 넋두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막상 몸에 병이 드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약봉지를 앞에 두고 울기도 하고, 한숨도 많이 쉬었다. 억지로 운동을 하지만 벤치에 앉아 씩씩하게 달리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니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었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나도 아프다. 내가 늘 복용하는 약이 네 봉지이다. 거기다 감기라도 걸리면 약은 한 움큼 더 보태진다. 약봉지가 탁자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찼다. 무슨 약이 그리 많던지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렇게 약을 많이도 먹어야 하나, 먹지 않으면 안 되는가’ 자학할 때도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병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다. 자신의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도 역시 자신이다. 의사는 그냥 멘토일 뿐이다.” 그러다 신세 한탄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술 한 잔 없이 긴 시간을 보내다니 참 우습지, 몇 년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몸이 아프니까 할 수 없네.” 둘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우리는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스트레스받고, 일에 집착하고, 술을 많이 마시고, 그래서 몸을 갈래갈래 찢어놓고, 이제 와서 세월을 탓했다.

일본에서 고령자가 어떻게 늙어 가는지를 추적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의 10%는, 90세가 넘어도 정정하다. 20%는, 60대 중반부터 쇠약해져 70대 중반이면 조기 사망하거나 요양병원행이다. 약골에 만성 질환이 많고 골골한 노인 타입이다. 나머지 70%는, 74세까지는 노인 일자리를 전전하다 75세부터는 병원에 자주 드나들다 요양원으로 간다. 나는 어느 부류인가.

어차피 인생이 바람이라면 그 바람 따뜻한 봄바람이면 싶다. 건강한 늙은이고 싶다. 아프다는 것은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힘든 시간 속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해본다. 어떤 이는 인간을 소우주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몸은 수많은 원자로 되어 있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수소, 탄소, 산소 등 원자는 밤하늘의 별에서 날아온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던 원자들은 다시 우주로 날아간다. 날아간 원자는 꽃이 될 수도 있고, 이슬방울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일지도 모른다. 원자들은 영원히 존재한다. 인간도 영원히 존재한다. 나는 아름다운 우주 속의 아름다운 원자이고 싶다.신동환객원논설위원전 경산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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