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 / 손월빈

발행일 2017-11-30 20:20:4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기다림은 뭍이다/ 떠나간 것들의 서두름이 향하는 곳엔 뭍이 있어/ 날아도 중심을 잊지 않는다/ 물고기의 부레, 해녀의 숨비소리/ 참을 때까지 참다가 바라보는 곳이 뭍이다/ 날갯짓이 잠들고 달빛이 길을 여는 곳/ 동냥의 아량을 기대하는 곳/ 뭍이 있어 희망을 걸어보는 사람들/ 망망대해에선 섬도 뭍이 되고/ 기다림의 언덕이 된다

- 너른고을문학 20집(작가회의 경기광주지부, 2015)

‘뭍’은 섬사람들이 육지를 일컫는 말이다. 지금은 사정이 역전되어 오히려 뭍에 사는 사람들이 섬을 그리워하지만 예전의 섬사람들은 늘 뭍을 동경해왔다. 제주 처녀들은 육지로 시집가는 게 로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직장생활 할 때인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제주지점에 근무하는 총각들의 인기가 현지에서 하늘을 찔렀다. 실제로 수십만 평 감귤밭 농장주의 딸과 결혼한 사원도 있었다. 그녀와 집안의 끈질긴 구애의 결과였는데 당시엔 큰 뭍으로 시집가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라고 했다. 심지어 추자도 처녀들이 건너편 육지 쪽에 보이는 완도군의 청산도나 보길도를 뭍으로 착각하고 시집갔다가 뒤늦게 낭패를 알아챈 경우도 있었다.

18세기 제주 여성으로 제주의 으뜸가는 부자였던 김만덕에 관한 일화가 있다. 그녀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기생의 수양딸이 되었다.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자신의 신분을 되찾아 객주를 차리게 된다. 이후 신용과 박리다매를 모토로 제주 최고의 거상으로 성장한다. 김만덕은 계속되는 제주의 가뭄과 재난으로 기근에 시달리는 수많은 백성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정조는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이때 만덕은 ‘임금을 뵙고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라고 말해 제주 여성으로서는 처음 뭍으로 나왔다. 당시엔 ‘제주의 여성은 뭍에 오를 수 없다’는 법이 있었다.

제주 여자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는 ‘월해금법’이란 법령이다. 만덕이 금강산 구경을 소망했던 것은 그저 명산의 유람이 목적이 아니라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큰 상이나 벼슬을 원했을 수도 있겠으나 마다하고 제주 여인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깨뜨리고 싶었던 것이다. 과거 제주를 삼다도라 해서 여자가 많았던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도 한몫했으리라.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정네에 대한 ‘기다림은 뭍이다’, 섬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그토록 제주 여성들에게는 ‘참을 때까지 참다가 바라보는 곳이 뭍이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물질하는 해녀는 제주를 표상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숨을 참아가며 바다 속에서 벌이는 잠수작업을 일컬어 ‘저승의 돈 벌어서 이승의 자식을 먹여 살린다’는 속담이 전해져온다. 바다 속의 물질은 ‘저승길’이라는 말처럼 그들에게도 두렵고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떠날 수 없는 운명이고 숙명이기에 그들의 의식이란 진취적이고 강인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체념적이고 순응적이다. 숨넘어갈 듯 생과 사의 경계에서 숨비소리를 내뿜으면서도 오로지 ‘뭍이 있어 희망을 걸어보는 사람들’ 그들에겐 ‘섬도 뭍이 되고 기다림의 언덕이 된다.’ 오늘날에는 제주 해녀를 고난의 삶을 극복한 제주인의 정신적 모태로 여기며 존경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지난해 ‘제주 해녀’가 여성문화로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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