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이냐’ ‘법이냐’

발행일 2017-12-03 19:32: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1980년대 레이건 미국대통령을 몰락시킬 뻔한 큰 사건이 터졌다. ‘이란 콘트라 스캔들’이다. 미국이 자신의 적성국가인 이란에 무기를 수출해서 번 그 돈을 우익성향의 중남미의 니카라과반군인 콘트라를 지원했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남미의 반정부지원을 금지한 볼랜드수정법안을 위반한 것은 물론 ‘테러국가와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미국외교의 대원칙을 흔들었다는 비난여론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때 한 용사가 나섰다. 해병대 출신인 NSC(국가안보국) 소속의 올리버 노스 중령이었다. 그는 의회증언에 나서 “모든 일은 내가 단독처리 했다. 그리고 이는 조국을 위해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록 부도덕하며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했지만…’이라며 불법에다 성과도 없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남미지역에서 불같이 번져나가는 공산화의 물결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애국을 위한 범법이었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러한 그를 미국 국민은 미국의 명예를 지킨 애국자로 인정해 주었다.

물론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외교를 하나의 사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위의 노스 중령의 경우도 그렇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의 정보기관원들도 ‘애국이냐’ ‘법치주의냐’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민 끝에 그는 법치주의보다는 애국을 선택했지만.

며칠 전 사이버사령부의 댓글에 대한 검찰의 기소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현 정권이 싫다고 천안함 폭침이 북한소행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죠’라는 내용의 댓글이 정치중립을 어겼다고 판단한 검찰의 판단력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조사결과가 북한소행으로 나왔는데 그럼 나라를 지키는 국군이 정부의 공식발표를 부정하란 말인가. 상식적으로도 북한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저질렀단 말인가? 일부의 진보나 좌파들이 부정한다고 무조건 중립의 자세로 침묵해야 한단 말인가?

이 문제는 애국이냐 법치주의냐로 고민할 내용도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도 검찰이 위법이라고 판단한 이상 가정법을 사용해 분석해 보면 이럴 것 같다. 이 정도의 범법이라면 주적인 북한군을 상대하는 국군이라면 적어도 몇% 정도는 애국의 이름으로 범법하는 장병이 나오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국군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 외도 ‘좌파들에 의해 제주해군기지가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되겠구나’ 등 많은 댓글들이 왜 위법인지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이런 점에서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준 신상렬 판사는 대단히 의(義)로운 판사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대공수사권 폐지 또는 이관을 주내용으로 하는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놨다. 전 국민을 놀라게 만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듯이 ‘6ㆍ25 이후 최대위기’인 이때 대공수사권이 어디로 가는지도 밝히지 않은 수정법안을 내놓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정치개입을 없애겠다는 신념윤리에서 한 조치라지만 이건 아니다. 윤리연구의 대가 막스 베버도 정치에선 신념윤리보다는 책임윤리가 더 중요하다 했지 않았나.

또 하나는 정가에 나도는 풍문이다. 대공수사권 폐지는 대선공약이니만큼 일단 국회에 내놓고 그다음엔 야당이 반대해서 안 됐다는 명분쌓기라는 말이 그것이다. 너무도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이다.

기구 개편안도 그렇다. 미국은 9ㆍ11테러를 당한 후 즉시 정보기구를 개혁했다. 그때 나온 개혁안의 요점은 바로 16개 정보기관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아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6개를 통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설치했다.

이번 국정원 개혁법안을 본 어느 전직 국정원간부는 ‘지금 같이 한 지붕 아래서도 정보파트와 수사파트가 갈라져 있어 교류가 잘 안 되어 문제가 생길 때가 많다’며 정보업무와 수사업무를 분리해 놓으면 정보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파트간 교류는 어느 나라 없이 문제인 모양이다. 촛불혁명이 만든 개혁정부답게 현 정부가 정치개입을 하지 않는 모범국정원 운영을 해 보이는 것도 하나의 개혁방안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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