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간 《문학들》 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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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읽은 소설은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1969년 작품 <生의 다른 곳에>이다. <삶의 다른 곳에>란 제목의 다른 번역본도 있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다. ‘야로밀’이란 시인의 일생을 그린 이 작품에서 쿤데라는 시인이 위대한 역할을 수행했던 때는 혁명들이 일어난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는 혁명에 복무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순수예술로 남아야 하는가.
‘야로밀’은 체코어로 ‘봄을 사랑하는 남자’ 혹은 ‘봄에게 사랑받는 남자’를 의미한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인 체코의 시인 야로밀에게 시는 무엇이며 그는 어떤 시를 썼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야로밀은 순수와 참여의 갈등 속에 내던져져 그 사이에서 분열하고 고통받다가 결국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간의 투쟁에서 노동자의 승리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하지만 예술은 현실에 대한 투쟁과 모순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긴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했고, 궁극엔 이념 대립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문학은 어쩌면 현실과 허구를 동시에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일지 모른다. 삶에서 이 둘은 분명히 변별되지만 소설에서는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다. 문학을 통해 독자들은 현실이 말해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만나게 된다. 어떤 사회가 하나의 이념에 붙들려 있을 때 소설이나 시는 그것 너머의 ‘다른 곳’을 보여준다. 이념이 전부는 아니며 모두 옳은 것도 아니다. 어쩌면 ‘생의 다른 곳에’ 인생이 있는지 모른다. 밀란 쿤데라는 야로밀의 비극적 최후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올해 어떻게 봄을 완성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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