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된다는 것 / 밀란 쿤데라

발행일 2017-04-09 19:38:1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 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왜냐하면 삶이라는 셈이 그대에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낮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어린애처럼 작은 구구단곱셈 속에서/ 영원히 머뭇거리게 될지도 모르게 때문이지

시인이 된다는 것은/ 늘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 시집 『시인이 된다는 것』 (세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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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기 전에 시를 썼던 쿤데라의 첫 시집에 실린 작품이다. 그는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글쓰기로 옥타비오 파스와 더불어 세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시는 우리가 이해하는 리얼리즘 시와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중간쯤에 있다. 그의 시들은 모두 자기만의 개성적 언어로 한 차원 높은 경지에서 표현된 것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하더라도 결코 알아먹지 못하는 횡설수설과는 차원이 달라 그의 사유는 늘 명민하고 명쾌하다. 사소하게 보이는 글 한 줄에도 인생의 비밀을 풀 열쇠가 반짝거린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 일찍 계산하고 절망하여 너무 일찍 포기하고 일어서버리면 안 된다고 한다. 끝까지 가보지 않은 길은 늘 후회만 남겼으므로, 설령 둘레가 또다시 자신을 배신하더라도 가야 할 길은 가야하고 끝을 봐야 할 것은 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작의 태도가 그러해야 하고 시인은 대저 그런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야 한다. 감각의 사제가 되어 아무런 유익이 담보되지 않고 무엇도 원치 않는 가운데서 끊임없이 정수리를 찧으며 ‘절망의 끝까지’ 가야 한다. 설익은 말놀음이 아니라 생각의 줄기를 잡아채 끈질기게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이 곧 시다. 그러나 누가 감히 그렇게 무모할 것인가.

시는 사물에 대한 관심 차원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집요한 관찰을 통하여 관통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의 전부를 걸고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 다른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다. 단순한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이성의 힘으로 다스려 치열하게 언어를 조탁해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거쳐 사물이 새롭게 태어난다. 좋은 시인은 그 과정에서 자기를 잊어버리는 아름다운 몰입 속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항상 끝까지 가보는’ 그 도정에는 치러야 할 대가들이 즐비하다. 고뇌하지 않고 고독하지도 않으면서 좋은 시를 쓸 수는 없으리라.

여기에 덧붙여 쿤데라는 ‘시의 천분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데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데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들로 걸러낸다면 살아남을 시인이 얼마나 될까. 카프카에 한 번도 매료되지 않고 쿤데라에 아무런 영감을 받은 바도 없이 카를교에서 뾰족탑의 건축미에 감탄하며 바츨라프 광장을 거니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가벼운 관광의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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