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프로가 아쉽다

발행일 2017-11-06 19:18:5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학자·논객은 전략적으로 극단적 주장고위공무원 언행은 정책신호 해석 여지 균형외교 성공 바란다면 좀 더 노련해야”



한·중 합의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이른바 ‘3불(三不)’ 입장을 표명하였다.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 ‘한·미·일 안보협력’의 군사동맹화 등에 관한 부정적 입장표명이 그것이다. 사드 배치 여부는 국토방위 차원의 군사정책이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겠다고 표명한 것은 국토방위를 양보하겠다는 것이다. 무장해제를 당한 셈이다. 주권포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성주 사드로 전 국토를 커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도권과 북부지역을 북핵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복안이 있는지 궁금하다. 북핵 방어가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중국의 불법적 제재를 풀기 위하여 연관성이 없는 군사정책을 결부시킨 점은 위헌적 소지가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거나 한한령을 풀려고 국토방위를 일부 포기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겠다는 입장 표명은 이례적이다. 한미동맹 파기선언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MD는 국가미사일방어(NMD)와 전역미사일방어(TMD)를 포함한다. NMD는 미국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될 경우, 고성능 요격 미사일을 발사해 공중에서 요격함으로써 미국 본토를 방어한다는 전략이고, TMD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부터 해외주둔 미군이나 미국의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전략이다. 한미동맹은 한국엔 북한의 침략을 미국의 군사력으로 보호받으려는 치명적 동맹으로 작용하고, 미국엔 미사일방어체제에 한국을 포함시켜 미국의 국가안보를 지키려는 전략적 동맹으로 작동한다. 한국이 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한미동맹의 미국 측 목적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는 곧 한미동맹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미군에게서 전작권을 찾아오고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전조로 보인다.

자주국방을 하겠다는 대의명분은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불량국가를 머리에 이고 있는 처지에 이런 식의 입장표명이 과연 국익을 위한 선택인지 의문이다. 중국의 제재를 점차 극복해가는 시점에 시의적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적국의 침략이 있을 때, 군사 협력으로 발전할 개연성이 있어야 안보협력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도 마찬가지다. 유사시 군사동맹으로 발전할 길을 막아버린 안보협력은 이미 안보협력이 아니다. ‘한ㆍ미ㆍ일 안보협력’ 대신 중국과의 협력을 선택한 셈이다. ‘3불’은 국가정체성의 변화를 예고한다. 미국의 우회적인 우려 메시지를 해독하지 못한 채 희희낙락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모습은 목불인견이다.

‘미ㆍ중 균형외교’를 대통령이 밝힌 것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계의 전문가나 강호의 논객은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다. 정책에 바로 반영되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걸러지기 때문이다. 핵 보유, 전술핵 재배치 또는 핵 공유를 주장할 수 있다. 다양한 옵션은 관련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공격 무기나 협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학자나 논객에 따라서는 자신의 주장이 강력한 협상 도구로 기능하기를 희망하면서 전략적으로 극단적 주장을 하기도 한다. 자체 핵 개발 주장도 그런 류다. 자체 핵 개발이 최선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난한 일이다. 핵 보유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라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에 비해 고위 공무원은 언행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정책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관련 국가나 국민들에게 정책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미ㆍ중 균형외교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고위 공무원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만 미ㆍ중 균형외교를 성공시킬 수 있다. 균형외교는 사후에 평론가나 학자들이 평가하는 용어다. 미국에는 친미정책, 중국에는 친중정책이 기본이다. 그렇게 해도 균형외교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미ㆍ중 균형외교라는 속내를 밝히는 순진한 인터뷰는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마저 놓칠 수 있다. 정부에 프로는 없고 감상적 아마추어만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노련한 프로가 아쉽다.오철환대구시의회경제환경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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