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구·경북 사람 아니라예”

발행일 2017-11-06 19:34:1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추락한 지역민 자존심 회복 시급 내년 선거두고 본적 옮기기 전에 바뀐 여야 너나없이 정신차려야”



최근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로 또다시 주목받고 있는 히틀러는 사실 독일 국적을 25살에 획득한 오스트리아인이다. 스무 살이 넘어 비엔나를 떠나 뮌헨으로 간 그는 바이에른(남부 독일) 사투리(Dialekt)를 익히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완벽한 독일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신통찮았다. 단어는 표준독일어였을진 몰라도 억양이 옛날 그대로였다. 히틀러가 패한 건 2차대전만이 아닌 것이다.

국적까지 바꿔도 고향 사투리를 바꾸긴 쉽지 않다는 얘기다. 대구ㆍ경북도 사투리를 고치기 쉬운 곳은 아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으면 굳이 고칠 이유도 없다. 매력적이란 평가도 많다. 그럼에도 최근 사투리 때문에 대구ㆍ경북 사람인 게 드러나 부끄러운 적이 있었다며 “본적을 옮기고 싶다”고 농반진반 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 안타깝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투표만 하면 ‘1번’(지금은 2번이 됐지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1번에 대한 높은 투표율은 SNS상에 곧바로 ‘보수 꼴통’이란 비난 폭탄으로 연결되면서 지역민의 자존심에 번번이 상처를 입혔다. 이럴 때마다 1번을 찍지 않은 사람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1번을 찍은 사람도 지역발전을 위한 한 표가 그런 식으로 폄훼된다는 게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 배경엔 타지역 사람도 이해할 수 없지만 지역사람조차 납득이 안 가는 팩트가 있다. 선거전만 해도 1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결과는 매번 같다는 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지난달 여론조사 결과가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어떻게 나타날지 벌써 궁금해진다.

2만6천 명이나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 민주당이 39.6%를 얻은 반면 한국당의 지지율은 9%에 머물렀다. 결과를 바로 지역 선거에 대입시키기는 무리지만 한국당 지지자가 많이 줄어든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지역민은 안다. 내년 선거 역시 대구ㆍ경북에선 9%가 39.6%를 누를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걸.

그 전망은 본지가 지난 7월 진행한 창간 72주년 여론조사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내년 선거에서 지역민 세 명 중 한 명(30.3%)이 ‘인물’을 보고 뽑겠다고 했다. 지역민이 그동안 1번에 표를 던진 가장 큰 이유도 사실은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1번의 지역 ‘장기 집권’으로 인해 인력풀이 야당보다 넓었다는 점 말이다.

그렇다면 1번과 2번이 뒤바뀐 지금, 지역의 자긍심을 되찾게 할 출발점은 뭘까. 무엇보다 여당이 된 민주당이 ‘보수 꼴통’으로 또다시 지역민을 낙인 찍히지 않게 할 책임이 더 크다는 걸 자각하는 것이다. 그 첫 걸음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인물’확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지역 민주당 사정을 보면 내년에 ‘우리는 대구ㆍ경북사람 아니라예’라는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또 해야 할 것 같다.

여당으로서 책임 자각은커녕 내홍이 볼썽사납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임대윤 민주당 전 대구시당 위원장은 중앙당 지원금을 불법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당직 자격정지 6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재용 신임 위원장 선임을 두고는 반대파가 직무정지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형편인데, 지역에서 굳건한 2번과 맞붙어 이길 준비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천재일우로 정권을 잡았음에도 자중지란으로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아 애가 타서 하는 소리다.

그렇다면 지금의 2번은 마음 편히 있어도 될까. 당연히 아니다. 오랫동안 1번으로 승승장구하면서 대구사람에겐 특히 ‘GRDP 24년째 꼴찌’라는 굴욕을 안긴 장본인들이란 점에서 지역민의 자존심을 살려야 할 책임이 여당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상이 바뀐 지금’ 공론화위 여론조사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설령 이긴다 해도 역대 1번의 지지율보다 낮을 경우 적어도 지역에선 패배나 다름없다.

“새누리당(한국당)이 바뀌든지 대구 시민들이 바뀌든지 (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대구 경제는 살아나지 않는다. 너무나 명확하다”고 강연한 사람이 장관 후보자가 되는 시대다. 진짜 본적 옮기기 전에 지역 여야 모두 정신 차리자.김승근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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