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 / 이진엽

발행일 2018-01-30 19:56:5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그대의 방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잠시 놀랐었지/ 가을 들판이 그려진 액자/ 그 곁에 세워진 책장의 모서리 밑에/ 누군가의 시집 한 권이 꼬옥 깔려 있음에/ 아냐, 놀랄 것도 없었어/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그대는 얼마나 책장과 씨름하다가/ 그 지혜를 얻었겠는가/ 한 권의 작은 시집/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소중한가를/ 그대는 절실히 느꼈으리/ 비록 읽히진 않아도/ 혼신의 힘으로 무거운 원목을 받치고 있는/ 저 시집의 넉넉한 힘/ 시의 언어가 모이면 얼마나 굳센가를/ 세상은 비로소 깨달았으리

- 시집『겨울 카프카』(시학, 2013)

책꽂이로 직행한 이후 단 한 번 누구의 손을 탄 적 없거나, 지난 신문지들을 묶어 내보낼 때 함께 버려질 수 있는 처지에 비해 ‘책장의 모서리 밑에’ 떠받치고 있는 시집 한 권의 굳건한 힘은 얼마나 듬직한가. 시집이란 대개 그리 두껍지도 얄팍하지도 않아 이런 용처에 전격 기용되기엔 안성맞춤의 물질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몇 겹으로 접은 신문지를 쑤셔 박는 것 보다, 짝이 맞지 않은 화투장을 하나씩 올려놓는 것보다야 한결 고상한 품격이 아닌가. 짐작하건대 책방에서 돈을 주고 샀을 리는 만무하고 누구한테 증정받은 시집이겠는데, 그 시집을 낸 당사자가 이 탁월한 변용의 정경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따져보면 그 책장 깊숙한 곳에 세워져 있거나 책장 바깥에서 깔려 누운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으리오. 어쩌면 ‘시의 힘’이란 그렇듯 맞아떨어지지 않은 아귀로 균형을 잡지 못해 기우뚱하는 세상의 한쪽 모서리를 살짝 받쳐주는 그 정도의 에너지가 아닐까. 시와 시인이 홀대받고 시집이 읽히지 않은 시대에 그만큼이라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면 감사하고도 또 갸륵한 일 아닌가. 시인의 한 수로서 충분하지 않은가.

평론가이기도 한 이진엽 시인은 ‘시인이 되려면 먼저 설한풍을 견디며 항아리 속에서 발효되는 김치를 보고 무엇인가를 배워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최소한의 정신과 품격이 그 속성 안에 아름답게 고동치고 있지 않으면 참다운 시인이 되기 어렵다’고 조언한다. 궁극적으로 ‘시는 원고지 위에서가 아니라 그 시의 주제를 정직하게 실현하려는 매순간의 삶 속에서 완성’된다는 시론을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시와 시인은 등가의 관계를 맺어야 하며, 모름지기 ‘존재의 깨달음’ 없이 섣불리 시 쓰기에 나서는 일은 삼가는 게 옳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치열함이나 절차탁마를 거치지 않은 내 시집은 불량품이고 내놓기 부끄러운 시들임이 틀림없다. 다만 지난 첫 시집이 내 어머니를 제1독자로 겨냥했듯이 이번 시집도 평생 제 손으로 시집 한 권 사서 읽어보지도 않았을 ‘무식한’ 내 오랜 친구들을 주 고객층으로 삼았다는 것이고, 그것이 실은 내 한계이자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혼도 없고 삶도 없는 기표들의 조합만으로 집적된 거품의 시집들과 함께 화분이나 뜨거운 냄비 받침대 대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는 매일반일 것이다. 시가 시대와의 불화를 겪지 않을 때가 어디 있으랴만, 시의 위력과 무력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 시대야말로 역설적이게도 시인은 축복일 수 있다. ‘시의 언어가 모이면 얼마나 굳센가를 세상은 비로소 깨달’을 혁명적인 때를 맞이할 것이다. 그렇게 힘을 쓸 시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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