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따따부따]신문은 CCTV다

발행일 2018-04-05 19:57:3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신문 등 언론이 가진 감시자 역할 도덕적 긴장 늦출 수 없게 만들어6·13 지방선거 후보자 검증도 기대”



오랜 생활 습관 탓일 거다. 현관문을 열고 조간신문을 집어들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물론 TV 뉴스가 있고 모바일로도 뉴스를 챙길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느닷없이 옛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기쁨은 종이신문에서만 얻는 덤이다.

요즘 뉴스는 그야말로 글로벌한 사건들이 차지한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에다 북한 최고 지도자, 미국 대통령, 중국 지도자들이 각 국가 명운과 이해를 걸고 만드는 굵직한 뉴스들이 등장하면서 동네 뉴스는 그냥 뒷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이웃들의 작고 시시한 일상사들이 궁금하고 또 절실하다.

조용필과 레드벨벳 등 가수들이 평양 가서 한바탕 쇼를 벌였다. 예상에 없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하는 통에 공연 시간이 왔다 갔다 했다는데 정작 우리 측 기자들은 김 위원장을 밀착 취재하지 못했다고 항의해 김영철 노동당부위원장의 사과를 받았다는 뉴스도 있었다.

뉴스가 신문에 보도되기 위해서는 기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신문이 가로등 같고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CCTV 같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워치독(watchdog, 감시견)이다. 오늘 국정농단 재판의 선고를 받게 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4년 전 4월 16일, 평일인데도 10시가 넘어서까지 출근하지 않고 침실에 있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렇게 나라를 뒤집어가며 물어대던 7시간의 행적 중 일부가 밝혀지면서 언론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그런 흉측한 사태까지 생겼을까 의문이 드는 것은 그래서다.

앞서 가던 트럭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 과속신호위반 단속카메라가 새로 설치됐다. 그랬구나. 보통 때 같았으면 당연히 지나갔을 정도의 신호에 멈춰 서 버렸으니 생각 없이 뒤따르던 나는 하마터면 앞차 꽁무니를 들이받을 뻔했다. 지켜보고 있구나.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손실을 입힐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이 감시의 눈 때문에 게으른 나의 도덕심이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타율로라도 사회 법규를 지켜가는 것이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인격이 타인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모든 일상생활에서 이 간단한 원리를 지켜가면서 사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았음을 고백하면서 ‘오죽했으면 성인도 신기독(愼己獨)이라고 벽에 써 붙여놓고 스스로를 경계했지 않았느냐’고 자위해 본다.

스스로 몸가짐을 삼가는 것, 공인이나 선출직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스스로를 범죄와 비리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과 함께 사회 전체가 정화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스스로를 견책하고 감시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신문은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SNS가 활발해지면서 신문이 경계하는 역할을 일반인들이 떠안아 주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온 국민이 감시에 나선 형국이다. 최근 유명 정치인들의 잇단 낙마가 그 증거다. 그러니 공인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러면서 언론의 역할을 짚어본다. 신문이 있어,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의 수고로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면서 또 보호받으면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특히 선출직이거나 공직자 등 세금을 녹으로 받는 사람, 공적인 신분의 경우 당연히 일반 사람들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런 감시를 피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의 사생활 보호보다 공인으로서의 몸가짐이 더욱 중요하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지금 전 국민이 감시자가 된 세상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자기 알리기에 본격 나서고 있다. 그들이 정말 우리들의 리더 자격이 있는지, 앞에서 주먹을 쥐고 흔들면 모두가 환호하며 따를 것인지, 그들이 우리들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될 것인지 가려내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또 우물에 침 뱉는 꼴이 된다. 신문이 신문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신문의 날(7일)을 맞아 신문의 역할을 기대한다.이경우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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