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 황지우

발행일 2017-02-08 01: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민음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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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개인의 현실적 고통과 시대의 아픔이 공존했던 80년대 초에 발표한 시다.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새운 자에게만 온다.’고 주장했으나 흥청망청 밤을 낭비한 자에게도 새벽은 왔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는 그는 뒷날 자청한 그때의 고난을 ‘그 누구를 위한 헌신’도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나는 “가슴이 무너진 적이 없는 사람은 시를 쓸 수가 없다”란 그의 말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고문을 견디다 못해 친구를 밀고해야 했던 상황이었기에 시대의 모순과 절망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했던 그였다. 1994년 ‘소월시문학상’ 수상 작품집인 그의 <뼈아픈 후회>에서는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이라고 했다. 그런 사회가 자신을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1983년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당시 그의 작품은 세상에 대한 야유와 냉소, 증오와 환멸로 가득 채워졌다. 이 시는 그나마 나무와 계절이란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시련을 견디고 꽃을 피우는 존재의 생명력을 긍정의 시선으로 그렸다. 스스로의 주체적 의지와 끈기로 혹독한 ‘겨울’을 극복하고 ‘봄’을 수확하는 인간의 힘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후 그는 대립과 불화와 증오만 갖고는 아무런 문제해결을 할 수 없음을 깨달아서인지 점차 모순관계에 있던 만물의 조화와 화해의 길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가 광주로 낙향해 1990년에 발표한 <게눈 속의 연꽃>은 불교적 화엄의 경지로까지 나아간다는 평을 받으며 이듬해 ‘현대문학상’이 주어졌다.

마치 그에게 상을 내리지 않으면 상의 권위를 의심받기라도 하는 양 웬만한 시문학상은 모조리 휩쓸 기세였다. 거듭된 수상으로 황지우 시를 둘러싼 논란은 차츰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다시 몇 년 동안 침묵만이 미덕이라며 칩거하다가 1998년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펴내는데, 백석문학상 수상과 더불어 예상 밖의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이후로도 1999년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화훈장도 받았다. 그런 그도 2009년 이명박 정권 유인촌 장관 시절 ‘찍어내기’에 의해 ‘한예종’총장직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지금은 ‘역임’의 이력만 남긴 채 갓 벗겨지고 끈도 떨어져 편안한 시인의 자리로 돌아온 그의 최근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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