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 문인수

발행일 2017-03-12 19:53:4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어느날 저녁 퇴근해오는 아내더러 느닷없이 굿모닝! 그랬다. 아내가 웬 무식?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후 매일 저녁 굿모닝. 그랬다. 그러고 싶었다. 이제 아침이고 대낮이고 저녁이고 밤중이고 뭐고 수년째 굿모닝, 그런다. 한술 더 떠 아내의 생일에도 결혼기념일에도 여행을 떠나거나 돌아올 때도 예외없이 굿모닝, 그런다.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수고했다 보고 싶었다 축하한다 해야 할 때도 고저장단을 맞춰 굿모닝, 그런다. 꽃바구니라도 안겨주는 것처럼 굿모닝, 그런다. 그런데 이거 너무 가벼운가, 아내가 눈 흘리거나 말거나 굿모닝, 그런다. (중략) 말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고 민망하고 시끄러운 경우도 종종 있다. 엑기스, 혹은 통폐합이라는 게 참 편리하고 영양가도 높구나 싶다. 종합비타민 같다. 일체형 가전제품처럼 다기능으로 다 통한다. 아내도 요즘 내게 굿모닝, 그런다. 나도 웃으며 웬 무식? 그런다. 지난 시절은 전부 호미자루처럼, 노루꼬리처럼 짤막짤막했다. 바로 지금 눈앞의 당신, 나는 자주 굿모닝! 그런다.

- 시집『배꼽』(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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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하니까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굿모닝 베트남’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에서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흘러나온 노래 ‘I feel good’까지 환기된다. “굿모닝”은 일기 불순한 영국에서 좋은 아침을 바라는 뜻으로 시작된 인사말이었다. 우리도 과거 “진지 드셨습니까?” “식사는 하셨나요?”란 인사말이 가난으로 끼니 때우기가 버거웠을 때의 시대적 배경이 깔린 것임을 안다. 중국의 ‘니하오마’도 그렇고, 무슬림의 ‘앗살람알라이쿰’ 이스라엘의 히브리어 인사말인 ‘샬롬’도 마찬가지다. 광화문 광장에서 그동안 내내 들어왔던 “이것이 나라냐?”라는 구호가 “이것이 나라다!”로 바뀌어 있음을 보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인사는 좋은 하루와 안녕과 평화의 하루를 염원하는 뜻이 내포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며 우선하여 바라는 하루치의 소망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낮에도 ‘굿모닝’ 밤에도 ‘굿모닝’ 주구장창 이 ‘굿모닝’을 아내에게 속삭이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인사라면 ‘한참을 생각해 보겠지만’ 아무리 억대의 상금을 벌어들인 전업시인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교사(지금은 퇴직했지만)인 아내에겐 무조건 이 ‘애완 개그’ 하나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굿모닝’은 세계 모든 인사의 총합이자 대표성을 띄며,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수고했다 보고 싶었다 축하한다’의 ‘통폐합’이다.

이런 인사말은 ‘말이 너무 많아서 복잡하고 민망하고 시끄러운’ 경우를 피해갈 수 있어 좋고, 전용으로 쓰다 보면 계면쩍음도 희석되고 만다. 그래서 ‘굿모닝’은 ‘엑기스’며 ‘참 편리하고 영양가 높은 종합비타민’이고 ‘일체형 가전제품처럼 다기능으로 다 통’하는 그야말로 특급 인사말이다. 그 덕분에 ‘지난 시절은 전부 호미 자루처럼’ 짤막짤막하게 안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 SNS에서 융단폭격처럼 쏟아진 생일 축하인사에 적잖게 당황했다. 이제 어디에서나 꼼짝없이 찬 나이로 (63)이 기재될 것이다. 나이로만 63층을 쌓아올렸다. 감격시대를 맞아 생일을 축하해준 모든 분들께 로빈 윌리엄스의 억양으로 “굿 모닝!” 통폐합 감사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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