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달라졌다 / 정희성

발행일 2017-03-13 20:15:5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 시집『詩를 찾아서』(창작과비평, 2001)

이 시는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밀레니엄 시대를 열 때 발표한 작품이다.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경력만으로도 일반에겐 진보 성향의 인사로 분류되는 분이다. 당시 독재타도와 민주화 같은 타깃이 없어진 뒤 쇠퇴한 저항 정신을 노래한 이 시를 노랫말로 안치환은 음반을 내기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저항보다는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고 좋은 세상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리라. 당장 구악의 청산, 사드, 국정교과서 문제, 최선을 다해 다음 대통령을 뽑는 일 등 앞으로도 남은 과제는 산적해 있다. 어떤 이는 광화문 촛불이 꺼지면 어떡하지 라고 공허감을 염려하기도 하지만 광장에 나가지 않고서도 정치에 참여하고 시민혁명을 완수할 길은 열려 있으며 또 그래야만 마땅할 것이다.

여기서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층민중이나 소시민의 입장에서 피부로 느끼기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의 공기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일부 386의 ‘저항’은 밥과 권력이 되기도 했지만,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집권당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누가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든지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니겠냐는 식의 무덤덤함이 자리 잡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봤자 평범한 사람의 삶이 표가 나게 달라진 건 없고, 다른 쪽에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칼을 갈았다. 하지만 정치의 지향만큼은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어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소신에 견주어 응원과 환호를 보내기도 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분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참 희한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물 빠지고 구질구질해 뵈긴 하지만 태극기를 흔들어대며 저항하는 저 사람들의 행태가 눈에 거슬리면서도 한편으론 안쓰럽다. 중도는 물론 많은 보수 쪽 사람들조차 학을 떼며 등을 돌렸건만, 탄핵이 완성된 이 마당에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는 일부 박근혜 맹신자들이 있어 안타깝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들 몇몇 정치인과 일부 추종세력들을 믿고서 뭔가 무모한 저항을 도모해보려는 것 같은데 딱하기 짝이 없다. 과거 대통령의 인사실패가 거듭될 때 새누리당의 한 의원도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차려졌어도 식당주인이 구정물 뚝뚝 떨어지는 걸레 같은 행주로 식탁을 닦으면 손님이 그 식당을 다시 찾겠느냐” 그런데 이건 망한 식당주인이 쓰레기통에 들어간 행주를 다시 끄집어내 엉뚱한 상을 닦으려 드는 형국이니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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