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의 다양성과 공정함

발행일 2018-04-09 20:05:2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어떻게든 졸업 가능한 대학의 시스템 입학허가가 곧 졸업장이 되는 현 상황 학생들이 입시에 바라는 핵심 공정함”



“방학 다섯 달하고 중간, 기말 시험 두 달을 빼면 장사는 한 해에 다섯 달입니다.” 경북대학교 북문에서 식당 하던 한 지인이 언젠가 해 준 말이다. 그 지인이 사업을 그만둔 사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중간고사 기간에는 식당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 시험에 집중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이야기다. 식당에도 안 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도 대학의 상대평가제에서는 수강생의 30%만 A학점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최소 30%는 무조건 C 이하의 학점을 받아야 한다. 교수로서 이런 상대평가제에 대해 느끼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특히 학생들이 다 같이 열심히 하는 전공 수업은 주관식 문제를 내고 채점을 해보면 점수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93점까지 A를 주고 92점부터 B를 줘야 한다면, 1점 때문에 B를 받는 학생은 억울함에 동감이 갈 정도다. 한 과목에서 A나 B학점을 받는 것이 대학에서 뭐 그리 큰 차이가 날까 싶겠지만 실제로는 인생이 바뀔 만큼 중요한 경우도 있다.

요즘 대학들이 많이 택하고 있는 1학년 융합학부제, 2~4학년 세부전공제에서는, 2학년 때 자신이 원하는 전공으로 진학하려면 1학년의 성적이 아주 중요하다. 이미 학생들이 대학입시에서 경험한 것처럼 항상 원하는 전공의 커트라인에는 비슷한 점수가 몰리게 마련이기 때문에, 한 과목에서 받는 A 혹은 B학점이 전공을 정하는 제2의 대학입시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기도 한다. 게다가, 이렇게 한 번 정해진 전공은 학과를 옮기는 전과제도로도 바꿀 수 없고, 재도전도 허용되지 않는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학생들이 가장 만족하는 평가방법은 사지선다형 객관식 시험 문제란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여러 명의 교수가 한 달 이상 합숙하면서 내는 객관식 수능시험에도 오류가 생기는데 혼자서 내는 문제에 오류가 없겠는가? 문제 풀이를 해 준 뒤에 답이 이상하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시험의 결과가 삶에 영향을 준다면 채점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문제를 검토해서 찾아온 학생의 주장이 옳다면 재채점은 물론이고 오류를 발견한 데 대한 상으로 보너스 점수를 주곤 한다.

대학교 시험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왜 많은 고등학교 학생들은 정시를 선호하는가?’에 대한 힌트가 될 것 같아서다. 핵심은 공정성이다. 정시선발에는, 적어도 재벌 3세라도 점수가 안되면 입학이 안된다는 선명함이 있다. 며칠 전에 서울 9개 상위 대학들이 2020년 입시부터 정시를 확대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당연히 수시가 불공정하다는 민원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이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시로만 대학 입시를 하면 고등학교 교육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란 주장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시를 확대하면 고교교육의 정상화에 이바지할까? 입학사정관 제도가 생긴 이래로 거의 빠지지 않고 학생부종합전형의 학생 선발에 참여해왔다. 그런데 점점 학생의 활동과 관심사에 대한 다양한 기록물에 제한이 생기더니 최근에는 오로지 학생기록부와 내신으로만 학생을 평가해야 한다. 게다가 일선 고교에서는 학생기록부를 학생 자신이 기록하게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결국 공정한 선발을 위해서는 내신 성적을 더 집중해서 살필 수밖에 없다. 결국, 내신이 큰 변수가 되는 것이다. 수시가 이런 식으로 지속하면, 아마 곧, 학급 친구들과의 내신 등급 경쟁이 곧 대학입시라는 것을 모든 고등학생이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열된 입시 문제는 입학만 하면 어떻게든 졸업이 가능한 대학의 시스템에 있다고 본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입학하든, 결국 자기 실력이 없으면 졸업을 할 수 없는 서구의 시스템이라면, 그렇게 기를 쓰고 입학에만 매달리는 일이 좀 해결되지 않을까? 비단 대학 입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시스템은 주객이 전도된 곳이 있어 보인다. 즉, 일단 들어가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하지만 한 번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작 그 시스템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직업이 보장되는 곳이 많다. 대표적으로 대학의 교수 사회에 그런 면이 있지 않은가?

대안 없는 비판이 특기인지라 개인적으론 당장 어떻게 하면 이런 현상이 개선될 수 있는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개선을 위한 상식적인 수준의 대안을 누군가가 제시한다면, 근무연수가 지나면서 거의 자동으로 받은 정년보장은 언제든지 반납하고 대학의 시스템 개선에 참여할 생각이 있다. 대학 입시에 대해서는, 입학 허가가 곧 졸업장이 되는 현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입시의 다양성에 동의해 줄 여유가 없을 것이다. 현시대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대학 입시에 바라는 핵심은 공정함이다.신재호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