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시 / 막스 에르만

발행일 2018-12-30 20:08:0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세상의 소란함과 서두름 속에서 너의 평온을 잃지 말라. 침묵 속에 어떤 평화가 있는지 기억하라. 너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 네가 알고 있는 진리를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하라. 다른 사람의 얘기가 지루하고 무지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들어주라. 그들 역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소란하고 공격적인 사람을 피하라. 그들은 정신에 방해가 될 뿐이니까. 만일 너 자신을 남과 비교한다면 너는 무의미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 것이다. 세상에는 너보다 낫고 너보다 못한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네가 세운 계획뿐만 아니라 네가 하는 일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그 일에 열정을 쏟으라. (중략)// 두려움은 피로와 외로움 속에서 나온다. 건강에 조심하되 무엇보다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너는 우주의 자식이다. 그 점에선 나무와 별들과 다르지 않다. 넌 이곳에 있을 권리가 있다. 너의 일과 계획이 무엇일지라도 인생의 소란함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너의 영혼을 평화롭게 유지하라. 부끄럽고, 힘들고, 깨어진 꿈들 속에서도 아직 아름다운 세상이다. 즐겁게 살라. 행복하려고 노력하라. 특히 사랑을 꾸미지 말고 사랑에 냉소적이지도 말라.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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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나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양식의 말씀인 이 잠언시는 1692년 볼티모어의 성 베드로 성당 생활규칙이 되었다. ‘즐겁게 살라. 행복하려고 노력하라’는 싱거운 듯한 이 말은 너무나 분명한 삶의 요체이다. 체스터 톤은 말했다. “행복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그리는 행복은 모두 단순소박하다. 복잡한 무엇을 얻으려 애쓰는 것 같지만 단순함을 열망하며, 왕이 되려 하지만 사실은 목동을 꿈꾸고 있다.” 지난 성탄일 교황의 메시지와도 같다.

최인훈은 소설 ‘광장’ 서문에서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라고 했다. 사람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삶을 지탱하지 못하며, 동시에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서도 살아가지 못한다. 이 잠언시는 밀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조언으로 가득하다. 밀실을 방치하지 않고 잘 가꾸는 것은 광장에서의 균형 잡힌 삶과 소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기보다는 스스로의 정신이 너덜거리지 않도록 신경 쓸 일이다.

사랑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꿈꾼다면, 많이 배웠고 가졌고 잘 났고 그래서 누리는 자가 좀 더 겸손해져야 하리라. 가진 것이 적고 누리지 못할지라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해져야겠다. 나도 누군가에 비해서는 넘치도록 많이 가졌고, 또 누군가와 견주어서는 형편없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겐 겸손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당당하리라. 국가가 나서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더욱 좋겠지만 내 정신의 근육으로 그 인프라를 구축하리라.

인생의 소란과 혼란 속에서 영혼을 평화롭게 유지하고 정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사색과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문학을 똑바로 이해하기 위해 밀실의 먼지부터 털어 내리라. ‘부끄럽고, 힘들고, 깨어진 꿈들 속에서도 아직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거미줄 창연한 밀실에서의 삶은 언제나 패색이 짙을 뿐이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행복하며, 자신에게 허락하는 만큼 행복하다. 별은 쳐다봐 주지 않으면 반짝이지 않으며, 종은 누가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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