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자중해야 한다

발행일 2017-05-01 19:48:5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사드비용 미국 부담은 한미합의한미FTA 등 다른 부문 이용 안돼국가 간 동맹의 기본은 신뢰”



신뢰는 인간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신뢰는 약속을 잘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미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미생은 다리 밑에서 연인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미생은 약속한 날 다리 밑에서 기다렸으나 연인은 오지 않고 폭우만 쏟아졌다. 물이 삽시간에 불어올라 교각이 잠겼으나 미생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미생은 마침내 다리 밑에서 교각을 끌어안고 익사했다. 연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 것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의 고사다. 이는 약속과 신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화로 인용되기도 하지만 고지식한 사람을 경계하는 교훈으로 전용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약속은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하다는 것이 이 고사의 참뜻이다. 전국시대 진나라 상앙은 도성 남문 근처에 나무 기둥 하나를 세우고, 그 옆에 “이 기둥을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 10금을 상금으로 주겠다”는 방을 써 붙였다. 선뜻 먼저 나서서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나무가 크고 무거워 실행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이유가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옮긴다 해도 반드시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 다음 날, 상앙은 상금을 다섯 배로 올렸다. 그러자 상금에 탐이 난 사람 하나가 나무 기둥을 뽑아 북문까지 옮겼다. 상앙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애초 약속대로 그 남자에게 오십 금의 상금을 주었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고사다.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이 고사는 공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제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공자도 신뢰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공자는 논어에서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 등 3가지를 정치의 본질로 적시했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하게 하며, 국민을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공자는 이 중 하나를 버린다면 ‘족병’이라고 했고, 그리고 또 하나를 더 버린다면 ‘족식’이라고 했다. 가장 기본적인 정치의 본질로 ‘민신’을 꼽은 것이다.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으면 정치는 성립될 수 없다. 신뢰가 정치의 기본이다.

신뢰는 국가 간에도 중요하다. 국가 간의 신뢰도 약속을 지키는 가운데서 싹튼다. 약속은 일반적으로 법으로 그 이행을 보장하지만 국가 간의 약속은 그 신뢰를 담보할 방법이 확고하지 못하다. 국제기구 성립 이전에는 국가 간 약속에 대한 위반이 있을 경우 전쟁을 통한 군사적 응징 이외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전쟁은 당사자가 희생이나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점이 있기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국가 간 약속을 파기하기 어려웠다. 국가 간 약속 파기는 전쟁을 각오해야 했다. 현재는 국제연합 유엔이 있어 약속 위반으로 인한 전쟁 위험은 옛날보다 많이 줄었다. 국제사법재판소 등 각종 국제기구에서 국가 간 약속 이행을 어느 정도 담보하고 있다. 국가 간 신뢰관계 형성은 전쟁을 막고 국제평화를 지키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사드 비용 10억 달러를 우리나라에서 부담하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부지를 제공하고, 미국은 사드 배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래의 약정사항이다. 사드 배치에 관한 한미약정서가 기밀에 속하는 문서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주한미군에 배치되는 사드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는 것은 상식이다. 한국과 미국의 공식적인 합의사항이란 점도 확실한 것 같다. 사드는 주한미군 보호와 중국 견제용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사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드가 북핵 요격으로 우리나라 국방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부지 제공을 하는 것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미군의 무기체계 비용을 우리에게 떠넘기려는 미국의 뜬금없는 찔러보기는 결코 정당하지 못하다. 국가 간 약속을 한미FTA와 같은 다른 부문의 흥정 도구로 악용해서도 안 된다. 사드 배치 협약은 국가 간의 약속으로 그 내용을 자의적으로 바꿀 수 없다. 국가 간 약속 위반에 대해선 강력한 국제적 응징이 있어야 한다. 트럼프는 자중해야 한다. 힘만 믿고 날뛰다간 큰코다칠 수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동맹의 기본은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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