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염치와 배려

발행일 2017-06-07 20:31:2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쓴 희곡 ‘피그말리온’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된 이래로 세계 도처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에서도 초연은 대성황을 이뤄 흥행에 성공했다. 건방진 독설가인 쇼는 자기 작품이 처음 무대에 올려지던 날 윈스턴 처칠에게 짤막한 편지를 보냈다. ‘윈스턴 처칠 귀하, 귀하를 위하여 저의 첫 공연 표 두 장을 남겨 놓았습니다. 친구가 있으면 같이 오셔서 보시지요.’ 처칠 역시 짤막한 답장으로 응수했다. ‘버나드 쇼 귀하, 첫 번째 공연은 갈 수가 없습니다. 만약 두 번째 공연이 있게 되면 참석하겠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 친구가 있겠는가’라고 빈정대는 쇼의 모욕적인 언사에 처칠은 ‘당신 공연이 두 번째까지 가겠는가’라며 쇼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로 응수한 것이다. 거친 설전이 오가지 않아도 짧게 툭 던지는 말 속엔 촌철살인의 가시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천박한 말은 보이지 않는다.지혜로운 왕이 있었다. 하루는 민심을 알고 싶어 평민 복장을 하고 신하 몇 명을 데리고 궁궐 밖으로 나갔다. 마을과 장터 등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거리에 다다랐다. 밤이 깊기를 기다려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지자 왕은 신하들에게 길바닥에 두 사람이 들기 어려운 커다란 바위를 놓게 시켰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지나가게 되었다. 어떤 장사꾼은 큰 바위를 보고 “아침부터 재수 없게 돌이 길을 막고 있네!”라고 불평하며 바위를 피해 돌아갔다. 잠시 후 서둘러 가던 포도청 관원은 “어떤 놈이 이렇게 큰 돌을 길 한복판에 두었지? 잡히기만 해봐라, 작살을 낼 테다” 하고는 씩씩거리며 지나갔다. 한참 후 어떤 젊은이는 돌을 힐끔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그냥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버렸다.

점심때 어떤 농부가 수레를 끌고 그 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돌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큰 돌이 길 한복판에 있으니 오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할까?”라고 말하며 수레를 지렛대로 활용하여 돌을 길가로 밀어냈다. 돌이 있던 자리에 비단 보자기가 있었다. 보자기를 펼쳐보니 왕이 쓴 친필 편지와 금 100냥이 있었다. “이 돈은 바위를 치운 그대의 것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대가 자랑스럽다”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 우리의 마음속에는 타인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며, 상대의 불편을 먼저 살피는 배려의 마음이 있는가. 비꼬고 냉소하는 말을 던질 때조차도 쇼와 처칠처럼 상징과 함축으로 말의 품위를 유지하는가. 컬럼비아 대학교 MBA 과정에서 유수 기업 CEO들에게 “당신이 성공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는데, 응답자의 93%가 능력이나 기회, 운이 아닌 ‘매너’를 꼽았다고 한다. 인류 역사는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그 사건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사소한 작은 일이 사건의 방향을 바꾼 일이 허다하게 많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우리는 각 후보의 말과 행동을 눈여겨 보았다. 말이 거칠고 험하며,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염치가 없는 사람은 국가 경영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국민은 선뜻 선택하기를 망설였다. 선거가 끝난 지금,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협치를 실천해야 한다. 협치가 이루어지려면 서로가 상대에 대한 예의와 배려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인사 청문회를 두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과 추궁을 한다고 벌 떼처럼 달려들어 문자로 협박하고 조롱하고 이런 일이 거듭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행동은 적개심만 부추긴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대통령이 성공하길 바란다면 반대편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긴 자는 진 자의 쓰린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려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승자가 자기도취에 빠져 패자를 배려하지 않는 풍토도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적폐다. 매너와 배려는 적의 마음도 열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려면 말의 품위와 예의, 염치, 배려의 마음 가지기 범국민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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