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서서

발행일 2018-04-29 19:45:5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생명 살리겠다는 의사들의 소명처럼 두 손 맞잡고 경계에 선 두 정상들도 통일의 숨 불어 넣어주길 고대한다”



남북회담으로 들뜬 분위기의 사월이 지나간다. 경계에 선 두 정상의 기분이 어떨까. 그 생각이 맴도는 날, 일과를 마치고 신생아 소생술 집중연수교육이 있어 대학병원으로 들어섰다. 아카시꽃 향기가 병원의 분위기를 밝음과 화사함으로 바꾸며 휘감는다. 갑작스레 찾아온 더위에 지쳐가는 가슴 아린 이들을 달래주려는 듯 문득 잠에서 깨어나 일시에 달려나오는 것 같은 꽃향기들이 병원으로 들어서는 지친 발걸음을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것 같다. 바쁜 일상에 치여 구겨져 있던 감성이 저 깊은 곳에서 되살아 나온다. 그래 봄이지 봄이야.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교정이 아닌가. 나의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어린 생명을 살리려 소생술 실습하러 가다 나도 모르게 목을 쭉 펴고서 심호흡을 해댄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봄 잔치가 한창이다. 구름은 하염없는 표정으로 유유히 흐르고 살랑대며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정원의 노란 카라 꽃은 지나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진홍의 철쭉들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손짓하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봄날이 가고 있다. 소리도 없이.

봄꽃을 즐길 겨를도 없이 일에 묻혀 지내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들을 위하여 진한 향기를 머금은 라일락꽃 백합들이 한껏 위로를 건네주는 것 같다. 소나무 사이로 솔바람이 쏴 지나간다. 정원의 허브들이 일제히 향기를 전한다. 한철 피었다가 소리 없이 져버리는 한해살이 꽃들이 한껏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연분홍, 진홍과 하양의 영산홍은 초록 받침 위에서 봐 달라며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멈추고 서서 그들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어대는 긴 머리의 전공의, 그를 보면서 젊음은 한때이거늘…. 순간순간 즐겨보는 여유를 즐기기를 바라본다. 쉬고 싶을 때 교육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긴장되는 일인가. 가끔은 짜증이 묻은 얼굴이었다가도 자연이 주는 색과 향에 동화되다 보면 어느새 마음만은 벌써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어렵고 힘든 오늘의 일정도 쉽사리 잘 받아들이고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으랴. 아무쪼록 젊은 피로 펄펄 들로 산으로 나가 마음껏 즐기고 싶은 저들의 마음이 기쁜 상태로 바뀌어 어린 핏덩이들을 살리는데 보탬이 되길 기대하며 강의실로 발길을 들여놓았다.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쉬고 싶은 휴일에 교육받으러 나오는 이들의 마음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강사는 열띤 목소리로 강의한다. 어찌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랴.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의 부단한 노력으로 어린 생명이 살아나고 세상 근심 없고 조금이라도 장애가 덜 생긴 몸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생명을 다루는 우리 의료인이 다해야 할 사명이지 않겠는가. 매년 하는 집중소생술 교육으로 신생아의 사망률과 장애로 태어나는 빈도가 개선되고 있다는 통계라니,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어느새 4회째를 맞는 집중 연수강좌에서 하나 된 마음으로 임하는 의료진들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이십 대 젊은 전공의부터 육십 넘은 원로 교수님까지 참석하여 세 시간 가까이 한 번도 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구령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하나, 둘, 셋, 숨! 하나, 둘, 셋, 숨! ” 복창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응급상황에 대비한 길고 긴 실전연습이다. 몸에 배어서 자다가 불려 나가도 저절로 자동으로 손과 몸이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숨을 불어넣는다. 축 늘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 모형을 앞에 두고 정성을 다해 “ 숨! 쉬어라~! 숨! 쉬어라~! 숨 쉬어라!” 외치며 부지런히 소생술을 시행한다. 젖어 있는 몸을 닦고 부드럽게 마사지하고 발바닥을 문지르고 입과 코의 분비물을 빨아낸다. 심장 마사지를 하고서도 숨이 자발적으로 돌아오지 않고 심장 박동이 느리면 기관 삽관을 재빠르게 하고 배꼽에 도관을 넣어 심장을 뛰게 하는 약물을 투입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수분 이내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져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몸무게 500g도 안 되는 생명을 살려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손길에 따라 목숨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에 서게 된다. 경계에 선 이들에게는 눈물 섞인 노력만이 답이지 않겠는가.

몸은 힘들어도 생명을 살리겠다는 소명으로 뿌듯한 오늘 우리의 가슴처럼, 두 손을 맞잡고 남과 북의 경계에 선 두 정상도 민족의 가슴에 통일의 숨을 불어 넣어주기를 고대한다. 하루빨리! 모두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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