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글 바른 말

발행일 2018-09-12 19:47:0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생일 선물에 생일 카드까지 준비했다. 늘 그랬듯이 정성스레 카드를 쓴다. 아, 이 낱말의 맞춤법이 이게 맞던가? 그러나 며칠 전 보았던 소설책의 기억이 또렷하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더 눈여겨보았다. 이름난 소설가의 소설에 나온 맞춤법이니 틀림없겠지. 큰 망설임 없이 책에서 본 그대로 적는다. 그리고 다음 날,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카드를 펴 보며 가장 먼저 한 말은 “맞춤법이 틀렸네”였다. 그날 밤 바로 국어대사전을 펼쳐 들었다. 소설책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필자가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꼼꼼히 챙기게 된 계기 중의 하나다. 특히 책이나 신문 등 인쇄물에 나온 것이라고 해서 절대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심어 준 사건이다. 그 후로는 방송 자막이나 인쇄물에서의 틀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더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러나 가끔, 아니 비교적 자주, 늘 바른 국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필자를 당황스럽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단락 나누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마무리한 원고를 누군가가 망쳐 놓는 것이다. 몇 권의 책을 내는 과정에서도 필자가 거듭 확인하고 쓴 맞춤법들이 교정자라는 직업을 가진 전문가들에 의해 틀린 맞춤법으로 변모해 있는 경험을 했다. 저자가 실수한 부분이나 오타를 고쳐주면 정말 좋을 텐데, 꼭 필요한 교정을 해 주는 대신 맞는 것을 틀리게 고쳐 놓곤 한다. 남의 글을 고치고 다듬는 일을 하는 분들은 틀린 것만, 정말 틀렸는지 확인을 하면서 고칠 줄 아는 예의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가 타인의 글을 교정볼 때 원칙으로 삼는 바이기도 하다.

필자는 학창시절 국어 과목을 가장 좋아했다. 수학이나 물리가 집중과 몰입을 통한 문제 해결에서 쾌감을 얻는 과목이라면 국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창 너머를 바라보는 여유가 허락되는 과목이다. 이처럼 국어를 대단히 사랑하고, 원리를 깨우치기 쉬운 한글을 만들어 주신 세종대왕께 매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필자도, 한국어는 정확하게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띄어쓰기의 규정도, 발음도 까다롭다. 영어 철자에는 민감한 고학력자들도 한글 맞춤법은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교에서는 6월을 ‘유월’로, 10월을 ‘시월’로 읽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필자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유궐(육월)’과 ‘시붤(십월)’로 읽는다. 한번은 화장실에서의 흡연을 경고하는 스티커에 ‘경범죄 처벌법에의거 처벌 받을수 있음’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화들짝하며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읽을 때는 정말이지 스티커에 적힌 대로 읽게 되는 까닭이다. 잘못된 띄어쓰기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놀라운 경험이었다. ‘현관열쇠와카드를 습득하신분은 연락바랍니다.’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은 협조문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때로는 이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면서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도 고쳐주고, 심사를 맡은 논문의 원고를 고쳐주기도 하며, 업무상 검토하는 서류의 오류를 바로잡기도 한다. 직접 글을 쓸 때도 많은 시간을 바른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할애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방심하는 순간이 오고 그래서 틀릴 때가 있기도 하다. 한국어는 완벽하게 쓰기가 참 어렵다.

말을 할 때는 구어체도 있고 사투리도 있고 해서 오류가 허용되는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연음은 되도록 지켜지는 것이 아름다운 우리말로 들린다. 예를 들어 ‘빗이’건 ‘빚이’건 ‘빛이’건 모두 ‘비시’로 발음하는 대신 ‘빚이’는 ‘비지’로 ‘빛이’는 ‘비치’로 말하는 것이 더 많이 들리면 좋겠다.

또 한 가지, 가르치는 일을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불편한 것이 있다. 바로 ‘가르치다’를 ‘가르치다’로 말하지 않고 ‘가르키다’ 혹은 ‘가리키다’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르치다’라는 표현은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육자들이 하는 경우가 많고, 경험칙으로 대학교수 3/4 이상은 ‘가르치다’를 ‘가르키다’나 ‘가리키다’로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가르치다’를 ‘가르치다’라고 제대로 말하는 교육자를 보면 기쁨이 앞서고 절로 신뢰감이 생긴다.

한글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가 더 바른 글 바른 말을 쓰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더불어 대화가 즐겁고 신뢰가 샘솟는 동료 교육자들을 보다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정인희금오공과대학교기획협력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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