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신년 모임에서 한 여당 국회의원은 “국회에 의원회관을 지은 이래 대회의실에 가장 많은 분이 오셨다”라고 흥분했다. 이게 과연 흥분할 일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을 향한 이들의 애정은 남다르다. 이날 행사에서 그들은 “문대통령을 지킬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지옥 같은 10년을 참아냈다. 우리는 조연, 대통령님을 주연으로 만들자”라고 외치며 전 정권들을 지옥으로 표현했다. 이날 행사에서 한 팟 캐스터 진행자는 “성남의 조폭을 파고 있다. 이재명을 잡기 위해서라면 쫄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같은 당 소속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죽여야 하는 적군 취급을 했다. 상식과 정도를 벗어난 광적인 지지는 오히려 그들이 지키고 후원하고자 하는 주군을 곤경에 빠트릴 수 있고 반대 세력들의 결집을 자극한다. 이들의 과격한 언행과 이들에게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의 발언이 과연 대통령과 당에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신년 모임 이틀 뒤에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연희동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광주지법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법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강제구인하러 온다면 우리를 밟고 가라. 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북으로 날아가는 것을 막은 구국의 영웅”이라고 외치며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었다. 미국이 우리의 동맹, 혈맹 국가이지만 보수단체들의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를 흔드는 것은 어색하다. ‘우리를 밟고 가라’는 말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전, 현직 대통령 지지모임이 벌이는 과격한 언행 자체를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지지하는 사람을 정말 도와주고 싶다면 상대를 자극하지 말고 표시 안 나게 행동해야 한다. 과격한 시위나 공허한 구호는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기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주장한다. 상대의 말은 아예 들을 생각조차 안 한다. 그러다 보니 적폐 청산을 외치는 쪽이 또 다른 적폐가 되고, 정의를 외치는 쪽이 도로 그 심판대 위에 서야 하는 경우가 되풀이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을 때, 갈등과 증오는 확대 재생산 된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 정도 확립된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품위와 기품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은 선거 없이 실질적으로 세 번이나 대통령에 추대된 인물이다. 그는 10대 나이에 이미 정신적 귀족이 되기 위한 수칙을 정했다. ‘교양과 고결한 품행을 지키는 110가지 수칙’은 제수이트 교단의 수칙에서 따온 것이다. 아직도 미국에서 출판되고 있는 그 수칙에는 “비록 적이라도 남의 불행에 기뻐하지 마라. 아랫사람이 와서 말할 때도 일어나라. 저주와 모욕의 언사는 쓰지 마라. 남의 흉터를 빤히 보거나 그게 왜 생겼는지 묻지 말라” 등의 수칙이 있다. 품위와 품격이 있어야 존경을 받을 수 있고 권위가 생겨난다. 정치가 난장판이고 천박하니 나머지 모든 부분이 덩달아 막장으로 치닫는다. 미꾸라지, 망둥이, 양아치, 나쁜 머리, 양두구육, 내로남불 같은 말들이 국민들을 얼마나 화나게 하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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