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 도종환

2017.01.11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 시집 『슬픔의 뿌리』(실천문학,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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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은 단순히 비어 있음을 뜻하지만 여백은 절제미를 위해 과감히 생략된 공간을 의미한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도 여백의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있어야 공간을 빛으로 채울 수 있다.
그렇듯 여백이 있는 풍경이 아름답고, 여백이 있는 사람에게 인간미가 느껴지는 것은 지당한 정서 반응이다.
빈틈없고 매사에 완벽하며 늘 철두철미한 사람보다는 어딘가 조금 헐렁한 구석이 있는 사람에게 더 정감이 가고 다가가기도 쉽다.
여백을 아는 사람은 욕망에 심하게 휘둘리지 않는다.
사람들끼리의 화음과 아름다운 조화도 서로가 빈자리를 내어주는 겸양의 미덕이 따라야 가능해진다.

여백이란 상대가 편안히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여백이 있는 사람은 포근하고 함께 있는 사람도 편안하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여백이라곤 바늘 하나 들어앉을 틈이 없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살아가면서 주위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상충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이때 자기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것은 신념일까 고집일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신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신념을 소신껏 지키려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신념조차도 상대와의 설득력 있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고, 또 그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물론 하늘이 두 쪽 나도 양보 못할 불변의 정의도 있다.
또 그것은 지켜져야 마땅하다.
그 경우 고집이 세니 자존심이 강하니 그러기도 하는데, 자존심은 자기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높이려는 마음이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고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념을 지키는 것과 고집을 부리는 것은 분명 다른 의미인데, 때로는 구분이 모호하고, 더러는 가치와 신념은 실종되고 아집과 몽니만이 남는 경우도 있다.
처음 발단과는 다른 양상으로 변질하는 현실에서의 수많은 말싸움과 대립, 다툼들이 대개 그렇다.
처음엔 정치적 견해의 표출로 시작된 이견 충돌이 종래엔 맹목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경우를 흔히 본다.
대개 고집은 비논리에 자기중심적 보편성을 입히고, 신념은 나름의 합당하고 합리적인 명분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고집이 반드시 나쁘고, 신념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고집쟁이 가운데는 의리 있고 심지가 굳은 사람도 많다.
다만 그런 완강한 고집은 가끔 둘레를 피곤하게 한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신념이라고 착각한 고집이 자기만족의 도구로 쓰인다는 점이다.
고집은 자기만이 옳다거나 자기가 옳아야 한다는 독선으로 쉽게 옮아가곤 한다.
진보성향의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 경우를 가끔 목격하는데 숨통은 터 가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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