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를 수밖에 없는 노래 / 김왕노

발행일 2017-05-21 20:16:1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노래를 하련다. 그늘 같은 노래는 오후의 이마를 식히고 이파리 같은 노래가 파닥여 갈채가 되는 노래를 하련다.(중략) 금남로에 다시 그 날이 오고 가버린 이름이 꽃잎으로 분분이 휘날린다. 이루지 못한 민주화의 꿈 이루지 못한 금남로의 꿈이 고립된 채 짓밟히고 총성이 다슬기처럼 귀에 박혀 처절하게 관에 누운 그날의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그 때가 그래도 잉걸불의 가슴이었고 가장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노래하던 날이었으니 늦었지만 그 노래를 다시 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며 임을 향한 행진곡을 부른다. 다시 부를 수밖에 없는 노래, 반드시 불러야 될 노래를(후략)

- 2015년 시인광장 1월호

이번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한 번도 당신을 보지 못한 소녀가 이제… 당신보다 더 커버린 나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을… 이렇게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1980년 5월 18일 태어나 3일 뒤 아버지를 여읜 유가족 대표 김소형씨가 추모사를 마치자 문재인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고, 곧바로 일어나 김씨에게 다가가 그를 껴안았다. 그날 가족을 잃은 모든 이의 심정이 그러했으리라. 그리고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었으며 참석자들은 옆 사람과 손에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며 노래를 이어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그동안 퇴색되어가던 5.18의 역사적 의미가 되살아난 듯하다. 5.18 관련기록이 세계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음에도 아직 5.18에 대한 많은 왜곡이 있고 진상 규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또 다른 역사적 비극이다. 진상 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니 진영 간의 감정문제가 아니라 상식이며 정의의 문제이다. 지금도 당시 신군부에 의해 생산되고 유포시킨 왜곡된 담론에 갇혀 있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피해 진상은 웬만큼 밝혀졌지만 가해 진상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북한의 공작과 깡패들의 준동에 의한 폭동이고 북한군이 투입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지금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5.18 희생자에게 제대로 사과한 일도 없다. 가뜩이나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실책과 악수로 인해 민주화가 많이 후퇴된 상황이지 않았던가. ‘이루지 못한 민주화의 꿈 이루지 못한 금남로의 꿈이 고립된 채 짓밟히고 총성이 다슬기처럼 귀에 박혀 처절하게 관에 누운 그날의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금남로에 다시 그날이 오고 가버린 이름이 꽃잎으로 분분이 휘날린다’. ‘그 때가 그래도 잉걸불의 가슴이었고 가장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노래하던 날이었으니 늦었지만 그 노래를 다시 한다’. ‘다시 부를 수밖에 없는 노래, 반드시 불러야 될 노래를’ 이날 목청껏 다시 불렀다.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부채의식이 스멀스멀 다시 역류한다. 누군가는 망각을 재촉하지만 이대로는 오월의 피가 결코 씻겨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