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닭논’

발행일 2017-07-26 20:04:3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장닭논’



요즈음 최대 관심사는 ‘일기예보’이다. 가끔씩 땅거죽만 훔치고 달아나는 빗방울을 보면서 애간장이 다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중부지방은 홍수가 나서 야단인데 영남지방은 저수지 바닥이 쩍쩍 갈라져 있을 정도이다. 오죽하면 사람들끼리 수인사가 “깡철이가 나타났나?”일까. 여의주를 물어도 용이 될 수 없는 이무기의 심술이라 하더라도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다.

가뭄보다 마른장마가 더 무섭다고들 한다. 가뭄은 장마를 기다릴 수 있지만 마른장마가 떠나고 나면 비가 좀체 오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도 그렇다. 적도지방에서 품어오는 많은 양의 고온다습한 수증기 덩어리인 북태평양기단과 북쪽의 오호츠크해기단이 맞부딪혀 서로 세력 다툼을 하는 것이 소위 장마전선이다. 그래서 이 시기인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가뭄이 이어지고 있으니 여간 큰일이 아니다. 오호츠크해기단이 약해지면 장마전선이 곧 물러날 것이고, 한발이 더 심해져서 곡식도, 농심도 타들어갈 것이 아닌가.

지난 23일은 염소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였다. 아직 지역에는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다. 계속 이대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에 정말 문제가 생긴다.

선조들은 자연재해가 닥치면 먼저 자신을 가다듬곤 했다. 나는 젊은 시절 기우제를 보면서 “저런다고 무슨 비가 오나?”하며, 미신으로만 여겼다. 자연에 대한 경배를 나의 작은 지식 몇 줄을 가지고 ‘샤머니즘’으로 깎아내린 큰 우를 범한 것이다. 자연은 가슴이 넓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자연의 힘을 능가하지 못한다. 자연의 품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거짓과 기만, 오만과 탐욕을 무엇으로 씻어낼 수 있을까?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아는 지혜와 덕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대사회이다. 기후문제만 봐도 그렇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많이 녹아 우리나라도 온대에서 아열대로 변해가고 있다. 그 주된 원인이 환경오염이라고 한다. 온실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하여 큰 구멍을 내고 말았다. 오존홀이 커지면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 급속도로 빨라지고 종내는 극지방의 빙하가 사라져갈 게 불 보듯 뻔하다. 국지성 호우로 어느 지역은 물난리를 겪고, 어떤 지역은 한발에 시달려야 하는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것은 우리들의 잘못에 대한 자연의 대답이 아닐까?

지난 주말 가뭄도 살펴볼 겸 교외로 나가보았다. 저수지 사정이 좋지 않은 논길을 걷다가 터고 갈라진 논바닥을 보면서 문득 내가 살던 고향마을의 ‘장닭논’ 생각이 떠올랐다. 아사(餓死) 직전에 살아남기 위해 장닭(수탉의 사투리) 한 마리와 논 한 떼 지기(1,000㎡)를 막 바꾸었다고 해서 붙여진 논 이름이다. 장닭 한 마리 먹고 괴나리봇짐을 진 채 고향을 등지던 가난한 이들의 아픔이 가뭄의 뙤약볕보다 더 찡하게 가슴에 아려온다.

연일 폭염경보가 내리고 불쾌지수마저 높다. 게다가 경기침체와 국내외 정세마저 불안한 형편이니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판국에도 정치인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TV 앞에서 미소를 머금는다. 헌법을 고칠 게 아니라 양심을 바로 세우는 게 더 중요하다.

헌법 개정에 앞서 정치권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정치개혁’을 하는 것부터가 순서이다. 지방선거에 헌법 스케줄을 맞출 게 아니라 지방선거라도 지역을 위해 참 일꾼이 나설 수 있도록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급선무다.

바다도 작은 시냇물로 시작되고 큰 산도 한 줌 흙에서 이루어진다는 성현의 말씀을 새 대통령과 정당지도자가 부디 진지하게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가뭄과 홍수, 내수침체에다 더위까지 겹쳐 서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졌다. 백성이 아프면 나라도 아픈 법이다. 이들의 지친 가슴에 푸른 희망의 물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조직법과 추경도 승인이 났으니 이제 정부가 먼저 뜀박질해야 하지 않는가. 변화의 모멘텀은 아무래도 대사면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지금이 국면 탈출의 적기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타이밍을 놓치면 효과가 반감된다. 물론 8·15특사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는 하나, 일반인에게 삶의 의욕을 북돋워주는 차원에서 밤샘을 하더라도 특사를 해주는 방안을 재고해주면 어떨까 싶다. 특사가 민심을 추스르는 방편이 되고, 새로운 발전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어찌 수고로움을 이유로 삼을 수 있을까? 지도자가 정성으로 덕을 베풀면 하늘이 먼저 알고 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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