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역설 / 제프 딕슨

발행일 2017-07-26 20:04:3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작아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다/ (중략)/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중략)/ 세계 평화를 더 많이 얘기하지만 전쟁은 더 많아지고/ 여가시간은 늘어났어도 마음의 평화는 줄어들었다/ 더 빨라진 고속철도/ 더 편리한 일회용 기저귀/ 더 많은 광고 전단/ 그리고 더 줄어든 양심/ 쾌락을 느끼게 하는 더 많은 약들,/ 그리고 더 느끼기 어려워진 행복.

-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2005)

199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의 작은 도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히틀러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따돌리고 놀림을 받곤 했던 두 학생이 자신들을 무시한 급우들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수백 발의 총알이 난사 되면서 13명의 무고한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갔고 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끔찍한 이 사건 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 뉴스를 접한 호주 콴타스 항공의 최고 경영자 제프 딕슨은 글 하나를 인터넷에 올렸다. ‘우리 시대의 역설’이었다.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했던 이 시는 삽시간에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한 줄씩 덧보태어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의 반향이 컸던 것은 세계인들이 그만큼 폭넓게 공감했다는 뜻이다. 당시 21세기 진입을 코앞에 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듯했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삶은 헛헛해져만 갔다. 좌표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양면적 자화상을 이 시는 아프게 꼬집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행복해져야 마땅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했다. 물질의 풍요와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것은 돈이 행복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물질적인 기반은 행복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질적 만족 없이 행복이 담보되기는 어렵다. 수년 전 부탄 총리가 유엔총회에서 국민총생산(GNP)지표를 ‘국민총행복(GNH)’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물량적 부의 추구로 인해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고 있다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GNH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동쪽 인구 70만의 작은 국가로 국민소득은 2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하고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성장의 과실이 고소득층에게 편중되는 양극화가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의 유속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졌고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에 가속화 되었다. 가진 자는 좀 더 너그러워지고 가난한 자도 어깨를 펼 수 있어야 격차는 좁혀질 수 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합의를 이끌어낼 패러다임을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 한없는 탐욕과 헛된 것에 대한 부질없는 집착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이를 걷어내야 삶의 근원이 들여다보이고, 그 안목을 가질 때의 자유로움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행복의 나라로 인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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