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한 움큼 / 공광규

발행일 2018-01-18 19:33:0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나올 때/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 한 움큼 빼서 코에 부비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식당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다 사과했지만/ 막무가내 식당 주인과 시비를 벌이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파출소까지 갔다/ 화해시켜보려는 경찰의 노력도/ 그를 신임하는 동료들이 찾아가 빌어도/ 식당 주인은 한사코 절도죄를 주장했다/ 한몫 보려는 식당 주인은/ 그동안 시래기를 엄청 도둑맞았다며/ 한달치 월급이 넘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시래기 한 줌 합의금이 한달치 월급이라니!/ 그는 야박한 인심이 미웠다/ 더러운 도심의 한가운데서 밥을 구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개새끼야!”/ 평생 주먹다짐 한 번 안 해본 산골 출신인 그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미운 인심에게/ 주먹을 날렸다/ 경찰서에 넘겨져 조서를 받던 그는/ 찬 유치장 바닥에 뒹굴다가 선잠에 들어/ 흙벽에 매달린 시래기를 보았다/ 늙은 어머니 손처럼 오그라들어 부시럭거리는

- 시집『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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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장날을 골라 찾아다니면서 부러 사람 다니는 길바닥까지 잔뜩 옹기를 부려놓고선 먹잇감을 기다리는 떡대 좋은 옹기장수가 있었다. 막걸리 몇 잔에 갈지자걸음을 걷는 ‘호구’가 나타나면 옴팡 뒤집어씌우는 수법으로 매상을 올린다. 하지만 옛 시골인정이 그리워 ‘시래기 한 움큼 빼서 코에 부빈’걸로다가 이렇게나 곤욕을 치러야 하는 상황은 많이 심했다. 하긴 요즘은 서리에 비교적 관대했던 예전과 달리 시골 인심도 많이 사나워졌다. 옛 추억이 생각나서 잠시 남의 밭에 잘못 눈을 돌렸다가는 절도죄로 호되게 걸려들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경우는 삭막한 도시의 야박한 인심 정도가 아니라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날강도 심보 아닌가. 설마 이런 인간이 있을까 의아해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도시 농촌 가릴 것 없이 비슷한 사례가 버젓이 횡횡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테면 범퍼가 약간 긁힌 경미한 접촉사고에도 옳거니 잘 걸렸다 한몫 챙기고자 뒷목잡고 드러눕는 얍삽한 교통사고 환자가 어디 한둘인가. 나도 오래전 정차상태에서 차선변경을 하다가 앞차와 가볍게 키스한 정도였는데 뒷목을 잡는 운전자 부부 덕분에 두 사람 치료비에 합의금까지 제법 큰 보험금이 빠져나간 사실을 나중에 알고서 황당해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일만을 떠올리면 우리 사회가 이토록 비루하고 참담하게 뒤틀린 세상인가 싶어진다. 요즘은 시래기가 뭔지 모르거나 ‘시래기’를 ‘쓰레기’와 동의어로 아는 아이도 있다. 시래기 한 움큼에 코 부빈 죄의 근원은 그로인해 촉발된 고향생각이었고 구수한 옛 인정의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그게 도적질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니 그 좋았던 인심도 다 도둑맞았나 보다. 식당주인의 몰인정에도 부아가 치밀지만 더욱 화가 난 것은 ‘더러운 도심의 한가운데서 밥을 구하는 자신’ 때문이다. 정말 다 때려치우고 ‘자연인’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땐 ‘개새끼야!’보다 한층 센 욕을 세상 향해 퍼붓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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