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시간여행』 (비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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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의 ‘치마’가 발표된 뒤 이에 대한 응수로 임보 시인의 ‘팬티’가 나왔다. 또 이 시들이 촉발시킨 시가 여러 편이다. ‘치마와 팬티’는 그 중 하나다. 다음은 문정희의 ‘치마’ 일부다.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는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하략)
내친김에 임보의 ‘팬티’도 읽어보자.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중략)/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이란 인식 없이 성매매와 성범죄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 사실 ‘치마’니 ‘팬티’니 하는 은유도 이미 한 시절 전 분위기이고, ‘방패’와 ‘창’으로 남녀의 성을 상징하는 것도 지금은 쉽지 않으리라. 혼란스럽고 잘못된 성문화의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성은 본능적인 쾌락행위임과 동시에 친밀하고 조화로운 남녀 간 인간관계의 고결한 표현이다. 성은 결코 불결하지도, 키득거리면서 가볍게 즐기거나 금기시할 것도 아니다. 방패와 창 사이 ‘힘의 싸움’은 더욱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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