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

너무 아픈 사랑 / 류근

2019.01.10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 다만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중략)/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 시집『상처적 체질』(문학과지성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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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 1996년 1월 6일, 가수 김광석이 자기 집 거실 난간에서 목을 매달기 불과 7시간 전, 한 케이블방송에서 공연을 하였고, 그때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마지막으로 불렀던 노래의 분위기와 연결 지어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죽은 그날에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내와 다정히 맥주 4병을 나눠 마실 정도로 가정적인 문제는 별로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서야 그의 부인 서해순씨의 과장된 제스처 등으로 타살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현재로서는 조울증에 의한 충동적인 자살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김광석이 곡을 붙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자신이 쓴 가사가 아니라 당시 ‘류근’이란 덜 알려진 젊은 시인이 작시한 노랫말이었다.
노랫말에 배경이 있다면 그것은 김광석이 아니라 류근의 사연이었으리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부정하고 싶은 심정으로,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애절하게 절규한다.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사랑의 패자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우는 노랫말이다.
류근은 군 복무 시절 사귀던 여자를 선배에게 빼앗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노래에는 당시 쓰라린 실패의 기억이 고스란히 배어있고, ‘먼 전생에’ 그가 쓴 ‘유서’로 남았다.

류근은 김광석보다 두 살 아래로 1966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다.
그는 시집의 날개 등에서 프로필을 꼭 그렇게 밝힌다.
문경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충주에서 모국어를 습득했다는 사실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이후 한 편의 작품도 발표하지 않다가 등단 18년 만인 지난 2010년에야 첫 시집을 냈다.
그의 특유한 종결어미가 화제가 되었고 SNS에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는 이제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을 알 정도로 걸쭉해졌다.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임을 터득할 만큼 노련해졌다.

그의 인기와 명성이 가져다준 영역 확장으로 공영방송의 한 역사 프로그램에도 고정출연하고 있다.
그 인기의 바탕에는 김광석이 일정 부분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시보다 노래 한 곡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현실에서 그들은 한때 죽이 맞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운이 좋은 존재였다.
김광석의 노래가 지금껏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 노래에는 시적 서정이 짙게 드리워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에도 방천시장에는 그의 노래가 울렸다.
이 시점에서 그들의 공통점을 굳이 말하자면 뒤늦게까지 너무 짜릿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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